땅에선 황제의 물수제비쇼, 하늘에선 개기일식 우주쇼
“기다림은 끝났다(The Wait is Over).”
전 세계 골프팬의 이목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마스터스 위크(Masters week)가 시작된 8일(이하 현지시각). 1년 만에 다시 패트론(마스터스는 갤러리를 패트론이라고 부른다)에게 속살을 공개한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문을 열자마자 흥분과 기대로 끓어올랐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9·미국)가 오전 8시 35분부터 윌 잴러토리스(28·미국)와 10번 홀부터 연습 라운드를 돌기 시작했다. 89명 참가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몸을 풀러 나왔다. 이미 4만명 가까운 인파가 우즈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움직이며 홀을 아홉겹, 열겹으로 에워쌌다. 전문 베팅업체들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걸음이 여전히 불편한 우즈의 우승 확률을 하위권인 100대1(1달러를 걸면 100달러를 받는 배당률)로 꼽아도 팬들의 우즈를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마스터스 홈페이지는 골프장 페어웨이를 따라 줄지어 선 조지아 소나무 위로 솟아오르는 해돋이 모습과 함께 “기다림은 끝났다”는 글을 올렸다. 최근 골프위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위대함이 디테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평가했다. 골프의 전설 게리 플레이어(89·남아공)는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는 절대로 잡초를 찾을 수 없다. 누군가 잡초를 발견하면 그린키퍼가 해고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고, 전 세계 1위 제이슨 데이(37·호주)는 “가로등의 유리를 꺼내서 양면을 깨끗하게 닦은 후 다시 끼워넣는 모습을 보았다. 오거스타내셔널은 코스 내 가로등 청소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했다. 지난해 디오픈에서 우승한 브라이언 하먼(37·미국)은 “개인 로커에 맛있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넣어 놓아 감동했다”고 했다. 올해 88회를 맞은 마스터스는 갈수록 골프의 블록버스터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우즈는 이날 티샷과 아이언 샷을 하면서도 그린 주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러 방향에서 어프로치샷을 하고, 오거스타 내셔널을 상징하는 유리알 그린 곳곳에서 퍼팅 테스트를 했다. 초반 3개홀을 도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압도적인 흥행과 관심으로 메이저 중의 메이저라 불리는 마스터스는 월요일과 화요일의 연습라운드, 수요일의 파3콘테스트가 목요일부터 시작하는 본 경기 못지 않게 관심을 끈다. 대회 기간 대회장에서만 판매하는 모자와 옷, 컵, 골프 용품 등 갖가지 마스터스 기념품을 잔뜩 ‘사재기’한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념품 숍을 나선다.
우즈는 이날 자신이 참여한 새 브랜드 ‘선 데이 레드’의 흰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지난 2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 도중 독감으로 기권한 뒤 7주 만에 공식 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즈의 컨디션은 좋아보였다. 걸음걸이도 지난해보다는 훨씬 편안해보였다. 파5홀인 13번홀에서는 홀까지 230야드를 남겨놓고 아이언 샷으로 홀 2m 옆에 공을 붙였다. 여러 홀에서 날카로운 아이언 샷을 선보인 우즈는 자주 환하게 웃었다. 티잉 구역에서 그린까지 긴 워터 해저드가 있는 16번홀(파3)에선 팬들이 “타이거”를 연호하자 우즈가 씩 웃어보이고는 물수제비 샷을 선보였다. 해저드가 앞에서 낮게 깔아치는 샷으로 물수제비를 떠 그린에 공을 올리는 ‘특별 이벤트’다. 우즈가 친 공은 물위에서 두어차례 튀어오른 뒤 그린에 올라갔다가 뒤까지 굴러갔다. 동반자인 잴러토리스의 공은 물 속에 빠졌다. 우즈의 대회 준비 과정이 5년전인 2019년 우즈가 ‘스포츠사상 가장 극적인 재기 드라마’라는 평을 들으며 5번째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하며 그린 재킷을 입었을 때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땅에서 골프 황제의 물 수제비쇼가 벌어졌다면 오거스타 하늘에선 달이 태양을 가리는 우주쇼가 벌어졌다. 북미에서 관측되는 개기일식은 2017년 8월 21일 이후 약 7년 만으로 다음 개기일식은 2044년 8월23일에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마스터스 로고를 박은 관측 도구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마스터스에는 “꿈의 무대” “4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올해는 황제의 물수제비쇼에 이어 개기일식이란 보기드문 우주쇼까지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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