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화마가 훑고 간 자리, 그 후 1년

신현종 기자 2024. 4. 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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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일 대형 산불이 발생한 충남 홍성군 서부면 일대(사진 위). 딱 1년이 지난 2024년 4월 2일 현재,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서부면 현재 모습(사진 아래). /신현종 기자

23년 4월 2일, 충남 홍성군 서부면 일대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서부면 중리에서 시작된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쉽게 산과 산을 넘었다. 축구장 2천여 개에 달하는 1천 337ha의 면적을 태우고서야 불은 53시간 만에 진화됐다. 충남도는 산불의 원인이 벌목작업 중 인부가 태운 담배에 의한 것이라 추정, 국립산림과학원과 홍성경찰서와의 긴밀한 협조아래 오랜 시간 감식과 조사를 진행했지만 끝끝내 유력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산불은 발생에 따른 피해 규모가 엄청나지만 그 특성상 발화자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산림청에 따르면 대다수의 산불이 입산자의 실화나 논·밭두렁 태우기, 쓰레기 소각 , 담뱃불 등 사람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다. 순간의 실수로 일어난 화재지만 피해 지역을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려 놓는 데는 최소 20~30년의 시간이 걸린다. 토양 상태까지 완벽하게 복구하려면 1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불에 탄 흔적이 남아있는 충남 홍성군 서부면 일대 야산에 2일 수선화 꽃이 피었다. /신현종 기자

산불 발생 1년 후 식목일을 맞아 홍성군 서부면 일대의 산을 다시 찾았다. 넓게 펼쳐진 붉은 민둥산 자락 사이로 검게 그을린 나무들이 남아 있는 모습이 그날의 참담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산불에 타버린 산을 빠르게 복구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묘목을 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에 불이 나면 나무만이 아니라 영양을 공급해주는 유기물이나 미생물도 같이 소실되어 버린다. 우선 불에 타버린 나무들을 제거하고 토양의 안정화를 위해 휴지 기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식재가 가능하다.

지난 2일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 산불 피해지역 일원에서 열린 제79회 식목일 기념 희망의 나무심기 행사에서 학생들이 편백나무를 심고 있다. /신현종 기자

지난 2일에는 산불 피해지역 일원에서 350여명의 주민과 학생들이 3ha의 산림에 편백나무 4천500그루를 심는 희망의 나무 심기 행사를 진행했다. 충남도는 올해 피해지역 5개 시군에 74억원을 투입 산림 497ha를 복구할 예정인데 내년에는 319ha, 2026년에는 484ha를 복구한다. 나무는 생태적·경제적 가치를 높이고자 단일 수종이 아닌 편백나무, 백합나무, 낙엽송, 소나무, 상수리나무, 아까시나무, 헛개나무 등을 심을 계획이다.

산불이 난 산은 강우유출이나 토양침식 및 산사태 등의 피해가 일어날 수 있어 사방사업도 진행해야 하고, 식재 시에도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과 추후의 산불 예방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등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다. 예를 들어 소나무로만 이루어진 단일 군락은 상대적으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 수종의 나무를 심는 노력을 기울인다.

지난 2일,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서부면 일대 야산의 모습. /신현종 기자

식목일을 앞두고 희망의 나무심기 행사에 참가, 편백나무를 들고 산을 오른 봉사자 중에는 지난 산불에 피해를 입은 이정하(홍성 서부초등학교 6학년)양도 있었다. “작년에 불이 났을 때는 집도 피해를 입고 너무 무서웠지만 오늘 이렇게 나무를 심고 나니 산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거 같아 뭔가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또 나무를 심고 싶습니다.” 이양은 고사리 손으로 민둥산 자락에 정성스레 편백나무를 심고 땅을 다졌다.

한번 발생한 산불을 만회하는 데는 100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의 살아생전에 다시는 같은 산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날 나무 한그루 없는 붉은 서부면의 산자락에도 봄은 알려야겠는지 홀로 수선화가 피었다. 척박한 땅에 틔운 노란 꽃망울에 봉사자들도 지나는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지난 2일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 산불 피해지역 일원에서 열린 제79회 식목일 기념 희망의 나무심기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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