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를 위협하는 것은 ‘구속’인가 ‘피치클락’인가, 또 대립하는 ML 노사[슬로우볼]

안형준 2024. 4.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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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와 사무국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오타니 쇼헤이(LAD)의 '도박 스캔들'로 시작한 2024시즌 메이저리그는 초반 엄청난 화두와 마주했다. 바로 피치클락의 양면성이다.

본토 개막전으로부터 채 2주도 지나지 않았지만 올시즌 메이저리그에서는 벌써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투수들이 팔꿈치를 다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사실 처음에는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한 베테랑 루카스 지올리토, 마이애미 말린스의 20세 영건 유리 페레즈가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봄에 종종 맞이하는 불운처럼 보였다.

하지만 특급 에이스들이 연이어 부상을 당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올시즌 2경기에서 완벽투를 펼친 2020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셰인 비버(CLE)가 4월 7일(한국시간) 갑자기 토미존 수술을 받는다고 발표했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에이스 스펜서 스트라이더도 같은 날 팔꿈치 문제로 MRI검사를 받았고 팔꿈치 내측 측부인대(UCL) 손상이 발견됐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에서 피치클락을 지적하고 나섰다. 피치클락이 투수들의 부상을 유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토니 클락 선수노조 위원장은 "선수들이 만장일치로 안전과 건강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사무국이 한 시즌만에 피치클락 시간을 단축시켰다. (투구 간 투수의)회복 시간이 짧아지는 것에 대한 선수들의 우려는 계속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런 중대한 변화의 영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야구와 그의 가장 가치있는 자산인 선수들에게 전례없는 위협이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피치클락을 '위협'이라 부른 강경한 성명이었다.

'스피드 업', 즉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고심하던 메이저리그는 2023시즌에 앞서 피치클락을 도입했다. 주자가 없을 때는 15초, 주자가 있을 때는 20초 내에 투수가 투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규정. 그리고 2023년 한 시즌 동안 피치클락을 실행한 메이저리그는 지난 12월 주자가 있을 때 18초 이내에 투구를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선수노조의 주장은 이렇다. 피치클락 때문에 투수들이 투구와 투구 사이에 몸을 회복할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게 부상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쉬지 못하고 연속으로 움직이면 부상의 위험이 커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사무국의 입장은 다르다. 사무국 역시 성명을 발표해 선수노조의 주장을 반박했다. 사무국 측은 "선수노조의 주장은 투수의 구속 및 회전 수 증가가 팔 부상과 아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수십년에 걸친 경험적 증거와 장기적인 추세를 무시하는 것이다. 리그는 장기적인 투수 부상 증가 원인에 대해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연구에서도 투구 간격이 짧은(인터벌이 짧은) 투수가 평균보다 긴 투수보다 부상을 더 당한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투수들의 부상은 '더 빠르고 더 회전수 높은 공을 던지려는 시도' 때문에 늘어나는 것이지 피치클락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치클락은 결국 '투구 인터벌'을 짧게 제한하는 규정. 예전부터 인터벌이 짧은 투수는 있었지만 인터벌이 짧다고 해서 긴 투수보다 부상 위험이 높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선수노조의 주장은 일반론이다. 충분한 휴식 없이 연속으로 움직이는 것은 부상 위험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사무국의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역사적으로 투구 인터벌이 짧을수록 투수가 더 잘 다치는 것은 아니었다.

알려진 근거만 놓고 보면 사무국 측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리기도 한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2021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 투수는 260명 이상으로 이는 10년 전에 비해 400%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피치클락의 도입은 2023년. 팔꿈치 부상의 급증은 주자가 있을 때 피치클락 시간을 2초 줄인 것은 물론 애초에 피치클락이 도입되기 전부터 이미 그 흐름이 명확했다.

돌아보면 2021시즌에도 갑자기 팔꿈치 부상 선수가 늘어났다. 바로 사무국이 '이물질 금지 규정'을 강화했을 때다. 투수가 손에 끈적이는 물질을 바르면 공을 더 쉽게 컨트롤할 수 있고 마찰을 늘려 회전수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는 투수가 로진백 외 어떤 물질도 손에 바를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1시즌 초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쏟아지던 노히터는 규정 강화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고 대신 부상을 당하는 투수가 급증했다.

지금은 '서울 시리즈에 참가한 LA 다저스 에이스'로 친숙한 이미지가 됐지만 당시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뛰던 타일러 글래스노우는 팔꿈치 부상을 당하자 "이물질을 쓰지 못하게 해서 다쳤다. 올스타에 뽑히고 사이영상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고 도리어 화를 냈다. 글래스노우가 스스로 사용했다고 자백한 이물질은 로진과 선크림의 혼합물. 이는 메이저리그가 규정으로 금지하고 있는 유서깊은 이물질이다.

2021년 당시 이물질 논란은 엄청났다. '스파이더 택'이라는 특정 제품이 이물질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일각에서는 투수들 사이에 만연한 이물질 문제가 1990년대 후반 스테로이드 사용이 퍼졌던 '약물 스캔들' 수준의 심각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물질은 약물과 마찬가지로 스포츠의 근간인 '공정성'에 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 당시 선수노조는 '이물질 없는 메이저리그'를 만드는데 힘을 쏟는 대신 이물질 적발로 인한 출전정지 징계를 무급에서 유급으로 바꾸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번에도 특급 에이스 두 명이 같은 날 부상을 당하자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강속구 투수의 부상 위험이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피치클락과 무관하게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부상 위험에 크게 노출돼왔다. 비버는 대단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아니지만 리그에서 손꼽히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꾸준히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다친 스트라이더는 물론 이미 부상을 당한 제이콥 디그롬(TEX), 셰인 맥클라나한(TB), 오타니 쇼헤이(LAD), 펠릭스 바티스타(BAL) 등은 모두 손꼽히는 강속구 투수들이다.

투수들의 평균 구속은 계속 오르고 있다. 인간의 신체가 10년 사이 갑자기 진화한 것이 아니라면 신체 능력을 더 끌어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는 것. 이 과정에서 부상의 위험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감안하면 투수들의 부상은 피치클락보다는 사무국의 성명처럼 피치클락보다는 '더 빠르고 더 많이 회전하는 공'을 던지려는 노력에 따른 부작용으로 볼 여지가 크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오히려 피치클락 도입 후 부상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피치클락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간과해서도 안된다. 부상의 주 원인이 피치클락이 아니라고 해도 위험성이 있다면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을 필요도 있다. 사람마다 신체의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다르듯 투수가 부상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인터벌도 모두 다를 수 있지만 피치클락은 이를 무조건 짧게 획일화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해 도입된 피치클락은 평균 약 24분의 경기시간 단축 효과를 냈다. 피치클락은 야구의 판도를 바꿀 획기적인 변화로 손꼽히고 있다. 과연 늘어난 투수들의 부상이 피치클락의 양면성 때문일지, 아니면 선수노조의 핑계거리로 그칠지 주목된다.(자료사진=위부터 캠든야즈에 설치된 피치클락, 스펜서 스트라이더)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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