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돈 털기가 가장 쉬웠어요"… 바가지 천국 된 지역축제
①"며칠이면 큰 수익" 상인들 한탕주의
②"자릿세 냈으니 챙겨야" 비싼 입점료
③지역 이미지 훼손 상관없는 외부 업체
"통삼겹은 5만 원, 홍어무침도 5만 원이고요. 꼼장어는 3만 원. 닭발은 싸네요, 2만원!"
봄은 여지없이 돌아왔고, 축제의 계절이 다시 시작됐다. 만개한 꽃을 따라, 따스한 햇살을 좇아, 전국 지역 축제엔 인파가 넘쳐난다.
그러나 과거 축제마다 지적됐던 일부 상인들의 바가지 요금 문제가 올해도 예외 없이 반복됐다. 온라인에서 지탄을 받고 언론에서 계속 지적을 받은 뒤,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와 상인들의 자정 노력이 이뤄지지만, 방문객 기분을 잡치는 축제장의 과도한 음식 요금 문제는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해당 지역의 전국적인 이미지까지 망치기도 히는 축제장 바가지 요금은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한국일보가 지역 상인, 지자체 관계자, 축제 기획자, 전국 축제를 도는 노점상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싼 축제 요금'의 구조적인 배경과 요인을 살펴봤다.
"축제는 지역의 기회가 맞긴 하죠. 그러나 돈이 아니라, 외지인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합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유튜브 발언)
'바가지요금' 올해도 여지없어
바가지 요금은 올해도 축제 관광객의 뒤통수를 친다. 벚꽃축제의 대명사인 진해군항제에선 꼬치어묵 두 개에 1만 원을 줬다는 후기가 올라왔다. 어묵 하나에 5,000원 꼴인데, 정찰제 가격(6개 1만 원)을 아득히 넘어선 바가지다. 해당 상인은 "비싼 어묵이라 그렇다"고 해명했지만, 온라인 상의 반응은 분노로 넘쳐났다.
서울 여의도 벚꽃축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 시민은 단무지 세 조각과 비계 밖에 없는 소량의 제육덮밥 사진을 올리며 '이걸 1만 원을 받았다'며 분노하기도 했다. 경북 경주시 벚꽃축제에선 닭갈비 가격으로 물의를 빚는 등 전국의 꽃 축제가 고가 요금 논란으로 얼룩졌다.
원인 ①: 상인 한탕주의
지역 축제에서 매번 이런 일이 생기는 배경에는 '한철 장사'를 노린 상혼(商魂)이 자리잡고 있다. 보통 주말을 끼고 이삼일 정도 짧게 진행되는 축제 기간에 최대한 매출을 올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제에선 굳이 단골을 확보할 필요도 없고 대부분이 한 번 왔다가는 '뜨내기 손님'이라, 바가지를 씌우는 것에 부담도 적다.
지역 축제 진행 경험이 있는 A(37)씨는 "높은 가격, 질 낮은 음식 탓에 하루에도 수십 건씩 민원이 들어와 개선을 요청했지만 (상인들이 알겠다고만 했지) 그 때뿐이었다"며 "상인들이 본전을 뽑겠다고 해 협의된 음식값이 널뛰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관광객 지갑을 터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어요."
(축제 경력 20년의 한 노점상의 증언)
원인②: 비싼 자릿세
못된 상혼이 사람의 문제라면, 구조적 요인도 분명히 있다. 바로 비싼 입점료(자릿세)다. 상인들은 축제장에 들어가기 위해 많게는 수백만 원을 주최 측에 지불한다. 인기 가수나 부대 프로그램의 수준, 예상 방문객에 따라 자릿세는 천차만별이다. 주최 측과 상인들을 이어주는 중개인들이 끼는 경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인들이 비싼 가격에도 입점에 기를 쓰는 이유는 충분한 매출이 나오기 때문"이라며 "지역 축제에서 이런 구조는 굳어진 지가 오래"라고 설명했다.
원인③: 외지에서 온 노점상
축제의 바가지 요금을 '그 지역 상인들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작 물을 흐리는 상인들은 외부에서 온 경우가 많다. 지자체나 행사 주관사를 통해 들어온 업체는 관리 감독이 가능하지만, 축제장 인근에 별도로 자리를 펴는 외지 상인이나 불법 노점상의 경우는 지자체 통제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축제를 장돌뱅이처럼 도는 '전문 축제꾼'들은 사유지나 상인회 등에 별도로 입점료를 내고 목 좋은 장소를 확보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리 쟁탈전이 수개월 전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자리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으니, 가격과 품목은 철저히 '수익 위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축제 20여 년 경력의 축제꾼 B씨는 "음식도 접근이 쉬운 대중적인 것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입점만 하면 기본 매출은 나온다"고 귀띔했다. 그는 바가지 요금 논란에 대해 질문을 받자 "저는 이게 생업"이라며 "가격은 비슷하게 맞춰 최소한 상도는 지키려고 하지만, 교통비와 설치비, 인건비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지자체 입장에선 이미지를 깎아먹는 노점상을 잡으려 하지만, 막상 단속도 쉽지 않고 단속의 효과도 없다. 이번에 가격 논란을 빚은 여의도 벚꽃축제 상인 대부분도 불법 노점상으로 알려졌는데, 서울시는 이들에게 7만 원 과태료 처분을 내리는 게 전부였다. 특히 한강공원 노점상들은 상인회까지 만들어 과태료를 공동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인력도 부족한 데다 상인들이 단속지역과 불가능 지역을 꿰고 있어 무작정 딱지를 끊을 수도 없다"며 "최소한 행사 이미지에 먹칠은 하지 않도록 타이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털어놓았다.
'품질 관리' 칼 빼든 지자체
다만 지차체가 선제적으로 입점업체와 가격·품목 등을 통제하는 모범 사례도 찾을 수 있었다. 7일 찾은 경기 가평군 에덴벚꽃길 벚꽃축제 일대 부스의 음식 가격은 일반 시중가와 큰 차이가 없었다. 떡볶이 5,000원, 잔치국수 7,000원, 닭갈비 1만 원, 불고기피자 1만 6,000원 등이었고, 카드 결제도 가능했다. 한 먹거리 부스 관계자는 "바가지 요금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사전에 메뉴와 가격을 조율했다"며 "1년에 한 번 있는 벚꽃 축제를 시민들이 즐겨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강영호(34)씨와 이재영(32)씨도 "알맞은 가격대에 알맞은 구성이 돼 있느냐가 가장 큰 판단의 기준"이라며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가지 요금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도 '축제 가격 관리'에 갈수록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지역 축제는 연중 해당 지자체를 전국적으로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홍보 수단인데, 여기서 바가지 논란이 터지면 해당 지역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사례로도 이어질 수 있다. KBS '1박 2일' 촬영 중 확인된 고가의 옛날과자 때문에 논란이 된 경북 영양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바가지 요금을 막기 위해 경남도는 축제정보통합플랫폼인 '경남축제다모아' 서비스를 만들어 고가 요금 신고를 신속하게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 강원도는 외지 업체 대신 지역 업체의 입점 비율을 높이고, 외부 업체가 필요한 경우 착한 가격 업소를 대상으로 입점 수수료 면제 혜택을 부여한다. 바래봉 철쭉제와 춘향제 등을 앞둔 전북 남원시도 합동대응반 운영을 통해 뜨내기 상인과 불법 음식 부스를 퇴출하기로 했다.
김병삼 한국관광협회중앙회 사무처장은 "지역 축제는 관광객에게 지역의 매력을 알리고,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기본 취지"라며 "양심적·합리적으로 영업하는 지역상인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지 않도록 지역 축제의 기획 방식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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