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창업주 생가 개방...진주 이어 수원서 배우는 ‘K기업가 정신’

이정구 기자 2024. 4.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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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최종현 회장이 40년 보낸 고택 15일부터 공개
SK그룹은 “1921년 SK 창업주 일가가 처음 터전을 잡은 경기 수원시 평동 7번지 ‘수원 생가’를 기업가 정신을 후대에 전달하는 기념관 ‘SK古宅(고택)’으로 새롭게 단장해 15일부터 시민에게 무료 개관한다”고 밝혔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이 자리 잡고 성장하던 1950~1960년 창업주 일가의 생활상과 최종건 창업회장,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알리는 공간으로 조성됐다./SK

8일 오후 경기 수원시 권선구 평동 7번지. 말끔히 새로 지어진 기역 구조 한옥의 대청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봉황새를 수놓은 이불이 눈에 띄었다. 선경직물(SK그룹의 모태)이 1958년 출시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린 ‘봉황새 이불감’ 원단을 성분까지 분석해 재현한 이불이었다.

고(故) SK 최종건 창업회장, 고 최종현 선대회장 형제가 태어나 40년을 보냈고, ‘닭표 안감’과 ‘봉황새 이불감’이 만들어졌으며, 한국의 섬유·화학 산업이 태동한 수원 생가가 창립 71주년을 맞아 ‘SK古宅(고택)’으로 문을 열고 이달 15일 시민에게 공개된다. 최 창업회장 포함 8남매가 나고 자란 한옥은 선경직물이 성장하는 1950~1960년대 모습을 그대로 담았고, 직물을 보관하던 창고는 SK 창업주 일가의 사업보국(事業報國)과 인재 양성에 대한 경영 철학을 조명하는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삼성·LG·GS·효성의 1세대 기업인이 교류한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이 ‘한국 산업화의 성지’라는 평가와 함께 기업가정신센터를 조성한 데 이어, 이번엔 수원에서 SK 창업주의 생가 단장이 이뤄졌다. 세계 유례없는 산업 발전을 주도했던 한국 기업의 성장사와 기업가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공간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오는 15일 공식 개관을 앞두고 일주일 전 먼저 찾은 SK고택에는 창업주 일가가 공부하며 손때가 잔뜩 묻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영어 교재 ‘성문핵심영어’ 책부터 가족의 옷을 직접 지었던 재봉틀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111㎡(약 336평) 대지 위에 75㎡ 크기 한옥 형태의 기념관과 94㎡의 전시관을 지어 ‘새 건물’이었지만 예스러움이 은은하게 담겼다. 리모델링한 한옥은 옛 기와의 70%를 그대로 썼고, 대들보·서까래 등 목재도 최대한 원형을 유지했다.

1940년대 수원 평동 7번지 한옥 앞. 최학배 공(사진 가운데), 이동대 여사(사진 뒷줄 왼쪽), 어린 시절 최종건 SK 창업회장(사진 뒷줄 오른쪽), 최종현 선대회장(사진 두번째줄 오른쪽)./SK

◇기와 70% 살린 ‘창업자의 고향’

한옥 처마 밑 ‘학유당(學楡堂)’ 현판부터 눈에 띄었다.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부친인 최학배 공의 ‘학(學)’ 자와 ‘느릅나무 유(楡)’에서 따왔다. 중국 한나라 고조인 유방이 고향의 느릅나무 한 쌍을 낙양으로 옮긴 일화와 연결해 ‘창업자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서예를 즐겼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친 고(故) 박계희 여사의 필체를 재현해 만들었다. 이날 오전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부회장)과 가족들, 주요 경영진 등 30여 명도 고택을 둘러보고 마당 한편에 느릅나무 한 그루를 새로 심었다.

최 창업회장의 가족은 1921년 수원 평동에 터를 잡았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76㎡(23평) 한옥집에서 1926년 최 창업회장, 1929년 최 선대회장이 태어났고, 4남4녀 8남매가 이곳에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었다. SK 관계자는 “수원식 한옥의 특징인 기역 구조를 그대로 살렸고, 창업주 가족들이 각자 보관하던 가족 소장품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최 창업회장·선대회장 형제가 공부방으로 사용했던 ‘건넌방’, 최 창업회장의 유학 자금으로 달러를 모아 돌돌 말아놓은 금고도 위폐로 재현했다. 창업주 일가는 1977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창업주 가족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마을 사람이 생가를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 사진은 가족이 최종현 SK 창업회장의 미국 유학자금을 모아뒀던 금고를 재현. 오른쪽 사진은 선경직물이 1950년대 출시한 봉황새 이불감으로 만든 광폭 이불. 당시 제품의 직물 구조 등을 분석해 재현한 것./이정구 기자

◇선경에서 SK… 평동 뿌리내린 기업가 정신

한옥 옆 직물 창고는 시청각 자료 등으로 채운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공글이(공구리·콘크리트 작업)도 내가 했고, 기계도 내가 놓고, 거기서 잠도 잤고, 그렇게 해서 오늘의 선경 모태를 만들었습니다”라는 최 창업회장의 생전 육성이 흘러나왔다. 젊은 시절의 최 창업회장·선대회장 모습과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해놨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1979년 최종현 선대회장) 등 SK 경영인의 어록을 방문 기념 카드로 준비했다. ‘네이버 예약’으로 15일부터 무료 개방하고, 주말·공휴일은 휴관한다.

고택을 중심으로 수원 평동 일대는 여전히 선경직물과 SK의 터전이다. 생가에서 약 400m 떨어진 선경직물 공장 터에는 현재 중고차 매매 단지 ‘수원SKV1모터스’가 들어서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자동차 공업사가 빽빽하게 들어섰고 분주히 차량이 오갔다. 1975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한 주민은 “의미 있는 건물이 새로 단장해 반갑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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