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남중국해 필리핀 난파선’ 대치… 군사충돌 ‘뇌관’ 우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4. 4.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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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美해군 상륙함
필리핀, 인수후 암초에 좌초시켜
해상기지 활용… 中과 영유권 분쟁
美 “방위조약, 난파선에도 적용”… 中 “美 개입땐 재앙될 것” 위협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인근의 필리핀 난파선 ‘시에라 마드레’함(왼쪽)에 식량 및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필리핀 보급선이 다가가고 있다. 중국은 최근 이 보급선에 잇따라 물대포를 발사하며 필리핀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필리핀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미국이 개입할 뜻을 밝혀 미중 갈등의 새로운 전선으로 부상했다. 스프래틀리=AP 뉴시스
남중국해에 죄초된 필리핀 난파선 ‘시에라 마드레(Sierra Madre)’함이 미중 군사 갈등의 새 화약고로 떠올랐다. 중국이 필리핀이 사실상의 해상 기지로 운영하고 있는 이 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자 필리핀과의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미국이 이 사안에 개입할 뜻을 분명히 하며 중국과 맞섰다.

2022년 6월 집권한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전임 정권의 친(親)중국 노선을 버리고 미국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11일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사상 최초로 미국, 일본, 필리핀 3개국 정상회담도 열린다. 필리핀은 7일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남중국해 공동순찰도 했다. 중국은 8일 “배타적이고 소수인 집단이 뭉쳐서 남중국해에서 대립을 유발하는 것에 반대한다”라고 경고하는 등 미중이 우발적으로 군사 충돌을 벌일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 美 “中, 필리핀 선박 공격하면 개입”

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고위 당국자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11일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담에서 시에라 마드레함에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조약이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중국은 남중국해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 조약은 필리핀 선원과 선박, 시에라 마드레함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중국이 해당 선박을 공격하면 필리핀 영토와 군대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미국이 방어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시에라 마드레함은 1944년 미 해군이 건조한 상륙함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오키나와 전투, 이오지마 전투 등의 보급품 수송 작전에 투입됐다 퇴역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때 이 퇴역 함선을 남베트남공화국에 지원했다. 남베트남이 패망했을 때도 3000여 명의 난민이 이 배를 타고 필리핀으로 탈출했다. 이후 필리핀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시에라 마드레함이 국제적 주목을 받은 시기는 1999년 필리핀 해군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 내 세컨드토머스 암초에 이 배를 일부러 좌초시키면서다. 중국이 남중국해 곳곳에 인공섬을 설치하며 사실상의 영토 확장에 나서자 필리핀 또한 폐군함을 정박시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필리핀 연안에서 160km 가량 떨어진 세컨드토머스 암초를 포함한 스프래틀리 군도는 유엔 해양법에 따라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 곳을 포함해 남중국해 전체의 90%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필리핀, 베트남 등 이웃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은 최근 이 일대에서 군사 위협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에라 마드레함에 물자 등을 전달하기 위해 접근하려는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를 발사해 선원 4명이 부상을 입었다. 4일에도 보급선에 물대포를 쐈다.

● 中 “美 남중국해 개입, 사라예보 사건 될 수도”

중국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담당하는 중국군 남부전구는 필리핀과 미국이 합동 순찰에 나선 7일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해상 및 공중 합동 순찰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앞서 3, 4일 미 하와이에서 열린 미중 해상군사안보협의체(MMCA)에서도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에 반대한다.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샤오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해양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지난달 29일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기고문에서 이런 남중국해 충돌을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사건’에 빗대며 미국을 위협했다. 이어 “필리핀을 대신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주변 국가에도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니 글레이저 저먼마셜펀드 인도태평양프로그램 국장은 FT에 “현재 미중 군사 대결의 가장 큰 위험은 세컨드토머스 암초”라며 “중국이 필리핀 선박 및 군대를 직접 공격하면 미국은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경우 광범위한 군사 충돌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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