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시민은 누구를 심판할까

이은정 기자 2024. 4.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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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벨트’ 예상외 혈전…여야 균형발전 공약 부족
살기 좋은 부산 만들려면 투표로 국민 주권 발휘를

지난 4일 오후 7시 부산 사하구 하단역 버스정류장. 강서구 김도읍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가 버스를 타려고 대기 중인 시민에게 허리를 굽혀 ‘한 표’를 부탁했다. 다음 날인 5일 같은 장소와 시간 강서구 변성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 부인이 유세를 펼쳤다. 사하구 하단동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강서구로 가는 시민이 많아 이곳에서 강서구 후보들의 유세전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엔 보기 힘든 풍경이다. 그만큼 두 후보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강서구는 변 후보와 김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강서구는 전체가 부산 북·강서을 선거구에 속해 있었다. 이번 22대 총선부터 새롭게 분구된 선거구다. 개혁을 원하는 젊은층이 많아 유리하다는 민주당과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원하는 시민이 많다는 국민의힘이 팽팽하다. 이곳이 부산 선거 판세를 좌우한다는 낙동강벨트 가운데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5일 강서구 명지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한 것도 여권의 위기감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이곳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사전투표를 했다.

강서구뿐만 아니다. 전통적으로 부산·경남(PK)은 보수 성향이 강했으나 여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곳이 많아졌다. 여론조사를 보면 3선 도전 민주당 현역이 있는 북갑과 사하갑은 민주당 기세가 강하다. 해운대·수영·남구는 보수 세력이 강한 지역이었지만 선거구 합구, 의정 갈등 등 여러 변수로 격전지로 변했다. 수영구에는 국민의힘이 과거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된 후보 대신 다른 지역구 심사에서 떨어진 후보를 땜질로 재공천하면서 반발심리가 드세다. 애초 논란이 되는 후보를 공천한 게 잘못이다. 연제구도 여론조사에서 진보당이 국민의힘을 상대로 앞선다. 부산 민심이 옛날 같지 않다는 뜻이다.

올 2월 현재 부산 인구는 328만9400명이다. 최근 3년 사이 10만 명가까이 인구가 급감하면서 대한민국 제2도시라는 타이틀이 흔들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부산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1000대 기업까지 기준을 넓혀 봐도 불과 28개뿐이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 부산 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젊은층은 떠날 궁리만 한다. 결국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공약에서 균형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나 실천 방향을 찾을 수 없다. 국민의힘은 산업은행 이전을 중앙당 공약에는 넣지 않고 지역 공약에만 포함했다. 민주당은 산은 이전을 막고 있는 주체인데 부산 공약에 ‘핵심 공공기관 부산 이전 추진’을 끼워 넣었다. 부산 사람을 그저 표로만 보는 셈이다.

지역구 공약도 실현하기 어려운 사안이 많다. 여야 후보들이 제시한 도시철도 공약이 대표적이다. 기장군 정동만 국민의힘 후보와 최택용 민주당 후보는 기장선과 정관선 추진을 놓고 경쟁 중이다. 부산진갑 서은숙 민주당 후보는 도시철도 6호선 신설을 약속했고 연제구 노정현 진보당 후보는 3호선 확장을 내걸었다. 영도구 박영미 민주당 후보는 영도선을, 서동구 곽규택 국민의힘 후보는 송도선 착공을 공약했다.

전국적으론 여야를 막론하고 민생경제라는 이름으로 퍼주기 공약을 쏟아낸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지만 재원 확보 같은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내놓지 않아 공수표에 그칠 전망이다. 선심성 공약은 정치 불신만 야기할 뿐이다.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심판론이 드세다. ‘정권심판론’과 ‘이조(이재명·조국)심판론’이 맞붙었다. 야당은 물가 상승, 민생파탄 등을 거론하며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과 대파 등 농산물을 중심으로 치솟는 물가가 공격 1순위다. 이조심판론은 대장동·입시비리 혐의 등 야권의 도덕성을 공격한다. 노골적으로 복수를 공언하는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30%를 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지난 5, 6일 4·10 총선 사전투표율은 역대 총선 최고치인 31.28%를 기록했다. 부산은 29.57%로 4년 전보다 4.05%p 상승했다. 여야는 사전투표 열기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았다. 높은 사전투표율이 10일 본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사전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라면 선심성 공약을 믿을 수 없다고, 여야가 싸우는 게 꼴 보기 싫다고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정치 참여를 소홀히 하면 입법권자들은 오만한 태도를 이어간다. 유권자 한 표가 선거 결과를 바꾸고 더 나은 부산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신성한 국민 주권을 행사해야 하겠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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