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성호]한국 사회에서 1만5000원어치의 죗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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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서에는 '경미범죄심사위원회(위원회)'라는 게 있다.
위원회의 설치 근거를 담은 운영 규칙의 첫 조항인 설립 목적에는 그 방향성이 명확히 설정돼 있다.
2015년 시작한 위원회는 설립 목적에 맞는 일을 적지 않게 해왔다.
그는 여전히 가게 문 밖에 놓여 있던 1만5000원어치 물품을 가져간 일로 경찰과 검찰, 법원까지 이어지는 판단을 받았어야 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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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작한 위원회는 설립 목적에 맞는 일을 적지 않게 해왔다. 2020년 대전과 지난해 충북에선 각각 수천 원어치의 물품을 훔친 80대 노인들이 모두 훈방 조치됐다. 아마 그들은 물론 주변인들도 경찰이 처벌만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을 것이다.
이러한 관용은 이무재 씨(84·본보 3월 21일자 A12면 참조)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이 씨는 폐지 수거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한 식당 앞에 놓여 있던 종이상자 안에 담긴 종량제봉투 10개(총 1만5000원)를 가져간 혐의(절도)로 입건됐다. 앞서 훈방된 이들과 달리 이 씨의 사건은 위원회의 안건으로 오르지 않았다. 담당 경찰서 관계자는 “이 씨와 피해자 모두 (합의에) 적극적이지 않아 합의되지 않았다”면서 “합의는 위원회 안건 회부의 중요 기준”이라고 했다.
법원은 일곱 달 뒤 이 씨에게 벌금 3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식당 앞에 놓인 상자를 수집하면서 그 안에 종량제봉투도 버려진 것으로 단정했다”고 했다. 그나마 이 씨가 초범에 고령이라는 점 등이 참작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형은 확정됐다. 이 씨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 양형만 보자면 한국 사회가 관용을 베풀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개월에 걸친 형사사법 체계를 거치며 그의 삶은 허물어졌다. 이 씨는 최근 지병인 척추협착증까지 악화해 하루 대부분을 누워 지낸다. 폐지 줍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됐다. 수입은 국가의 지원금 등 수십만 원이 전부다.
그는 여전히 가게 문 밖에 놓여 있던 1만5000원어치 물품을 가져간 일로 경찰과 검찰, 법원까지 이어지는 판단을 받았어야 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의문은 각 단계를 거치며 켜켜이 쌓여 사회에 대한 분노로 커졌다.
가난할지언정 남에게 기대지 않으려 폐지를 줍던 80대 노인에게 관용이 빨리 찾아갈 순 없었을까. 위원회가 열리지 않은 게 안타까운 까닭이다. 물론 합의가 안 돼 이 씨의 안건을 상정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설명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피해자가 “경찰이 자의적으로 법 집행을 한다”는 비판을 할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위원회 운영 규칙에 당사자 간 합의가 안건 상정의 필수 조건으로 못 박혀 있지 않거니와 상정 뒤 다수결 투표를 거친다는 점이 눈에 밟힌다. 위원회는 반드시 훈방 등의 처분을 내리는 게 아니라 최대 7명으로 구성된 위원들이 투표를 한다. 위원 가운데는 경찰이 아닌 외부인이 절반 이상이어야 한다. 경찰이 우려했을 비판을 피할 수 있게 제도적 설계가 돼 있는 셈이다.
이제 이 씨의 분노를 법으로 달래줄 길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앞으로 진짜 나 같은 일이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한탄을 경찰이 귀 기울여 줬으면 한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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