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 우려에 수업 재개한 의대…저조한 출석률에 비대면 강의(종합)
의료 공백 장기화에 커지는 환자 신음소리
(전국종합=연합뉴스) 정부와 의료계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 공백이 5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직서를 낸 전공의를 따라 휴학계를 낸 의대생들도 학교로 돌아오지 않자 대학 측은 무더기 유급을 피하기 위해 비대면 강의를 여는 등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원을 떠나지도 못한 채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들의 피로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려 속 재개된 수업에도…돌아오지 않는 의대생
"교수님, 혹시 오늘 학생들 나왔나요?", "보이는 대로입니다."
환하게 불이 켜진 강의실을 나오던 교수는 취재진의 질문에 짤막하게 답한 뒤 빠르게 복도를 지나갔다.
전북대 의대가 애초 예정된 개강일 이후 40여일 만인 8일 수업을 시작했지만 이날 강의실은 학생들이 오지 않아 휑한 모습이었다.
학교는 휴학하지 않은 20여명의 학습권 보장과 고등교육법상 1년에 30주 이상 수업일수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학사일정을 더는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날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일부 강의실에서는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는데, 대면 수업이 부담스러울 학생을 위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듯했다.
교수들은 의대 증원을 반대하며 집단 휴학을 시작한 만큼 앞으로도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북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개강했는데도 의대생이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의대 교육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의대 졸업을 시작으로 인턴, 전공의, 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 수련·양성 체계를 고려하면 의대생 휴학은 앞으로 4∼5년간 의료 공백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슷한 시간 대구 중구에 있는 경북대 의대 캠퍼스에서도 예과와 본과 1∼2년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재개했지만, 비대면 강의가 이뤄진 탓인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경북대는 학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를 막기 위해 이날부터 수업을 재개했지만, 등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2주가량 비대면 강의를 하고 있다.
이미 개강을 한 대학의 의대생 출석률도 저조한 편이다.
가천대 의대는 지난 1일부터 온오프라인 수업을 재개했지만, 재학생 250명 중 대면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천대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강의실로 돌아오라고 계속 설득하고 있다"며 "일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추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대 역시 지난달 24일부터 수업하고 있지만 대부분 불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들은 집단 유급 사태를 면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남대·조선대·부산대·차의과학대·가톨릭관동대·계명대·건양대 등은 오는 15일 수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대부분 대학은 지난 2∼3월 일부 수업을 시작했으나 학생들이 출석하지 않아 그동안 개강을 미뤄왔다.
수업 재개가 늦어진 만큼 방학 없이 줄곧 수업한다면, 정상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있어 무더기 유급 등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인터넷에 강의를 올려 학생들이 언제든 비대면 수업을 듣고 출석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비대면 강의를 시작한 제주대 관계자는 "강의 출석률은 파악이 안 됐지만, 집단 유급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주 중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진주 경상국립대 의대 역시 2∼3주 내 수업 동영상을 시청하면 출석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유급을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다.
환자 못 떠나는 교수들…일부는 1주에 100시간 진료도
의료 현장에서의 혼란이 지속하자 당초 사직서를 내기로 결의한 대학병원 교수들도 대부분 현장을 지키며 환자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충남대 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가 교수 336명을 대상으로 신체적·정신적 상태에 대해 설문한 결과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는 비율은 응답자(253명)의 87%에 달했다.
이 가운데 주 100시간 이상 진료한다고 답한 비율도 11.9%나 됐다.
전체의 80.2%는 "24시간 연속근무 후 다음 날 12시간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부산대병원은 일부 교수들이 사직서를 냈지만, 대부분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현장을 지키고 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주 52시간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여러 달 전부터 수술이나 진료를 예약한 환자들을 현실적으로 외면하기 힘들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 병원이 하루 빨리 정상적으로 운영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제주대 의대 역시 교수 153명 중 1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현재까지는 모두 정상적으로 나와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울산대병원에서는 근무 축소를 예고한 교수들이 대부분 진료와 응급실 당직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충북대병원 도내 유일 신생아 집중치료실과 응급실은 남은 의료진들이 빈번하게 숙직 근무를 하며 운영하고 있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곳곳서 수술 불가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대학병원으로 중심으로 의료 공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강릉아산병원은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로 인력이 부족한 탓에 현재 정형외과 수술과 외과 복막염을 제외한 수술이 어려운 상태다.
강릉아산병원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산과와 부인과 수술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줄곧 띄우고 있으며, 흉부·복부 대동맥 응급 역시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가 힘들다고 안내하고 있다.
조선대병원은 평상시 대비 병상 가동률 70%, 수술 진행률 50%, 외래진료 90%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진료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주대병원은 수술실 12곳 중 8곳만 가동하고 있으며, 병상 가동률은 기존 70%대에서 현재 30%대로 떨어졌다.
전남대병원의 경우 의료진의 피로도 누적으로 현재 외래 진료와 수술 건수 등이 점차 감소세로 돌아섰다.
광주의 한 3차 병원 관계자는 "대통령과 전공의 단체의 면담으로 일단 대화의 물꼬를 텄으나, 사태에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 불안한 상태다"며 "이번 사태가 조만간 종식되리란 기대감으로 버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영식 권준우 이강일 형민우 백나용 김상연 강태현 장지현 정찬욱 박정헌 천경환 박성제 기자)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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