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껍데기 없어 먹기 편한 中 바지락? 北주민 강제노동 숨어 있었다
北 노동자 동원, 제재 위반
북한 주민들의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중국산 수산물이 한국으로 대량 수입돼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이는 북한 노동자가 번 외화가 핵(核)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지 못하도록 다른 나라의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위반이다. 이렇게 가공된 중국산 수산물이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어 한국 소비자들이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자금을 자신도 모르게 지원해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미 워싱턴 DC의 비영리 단체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로부터 확보한 중국 회사의 무역 자료 및 수출입 코드, 제품 포장 등을 분석한 결과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했다고 확인된 중국 수산물 가공 회사 여섯 곳 중 최소 세 회사가 2020~2022년 한국으로 수출한 물량이 약 420t에 달한다고 집계됐다. 이들 수산물은 모두 중국 다롄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뒤 전국으로 유통됐다. 이들 세 회사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최소 400여 명에 달한다고 파악됐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는 최근 중국 내 수산물 가공 중심지인 랴오닝성 단둥시 둥강에 있는 공장들을 방문해 북한 노동자 20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업종에 걸쳐 최소 15개 중국 회사가 1000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한국에 들어와 유통되는 공급망 구조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는 “(확인된 420t은) 중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수출하는 전체 물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본지 취재 결과 중국 회사들은 북한 노동자들이 손질한 바지락·오징어·명태·우렁이 등을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한국 업체들이 들여온 중국산 수산물은 업계 상위권의 대형 마트 및 온라인 쇼핑몰들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단둥 타이화’가 한국으로 수출한 바지락 제품은 A마트 홈페이지에서 평점이 5점 만점에 4.8점이었다. 3000건이 넘는 제품 리뷰엔 ‘껍데기가 없이 살만 있어서 먹기가 편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북한 노동자들이 껍데기 제거를 한 결과다. 다른 중국 회사 ‘단둥 타이펑’으로부터 조개류 등 각종 해산물을 수입하는 한국의 한 수입 업체는 홈페이지에 대형 마트의 즉석 수산물 조리 코너에 자사 제품이 오른다고 광고하고 있다. 연간 1만t 이상의 생오징어를 가공하는 대형 중국 기업인 ‘단둥 위안이’는 한국에 각종 오징어 가공품을 수출한다고 확인됐다. 중국산 수산물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수출되기 때문에 유통사나 소비자가 생산지만 보고 북한 강제 노동이 동원됐는지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앞서 지난해 10월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는 북한 강제 노동이 동원된 중국 회사 열 곳으로부터 수산물을 수입한 미국의 수입업체가 70여 곳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대형 식료품점인 월마트·자이언트, 패스트푸드 기업인 맥도널드, 미군 기지와 공립학교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세계 최대 식품 유통업체 시스코 등도 이들 수산물을 사용해왔다고 드러났다.
이들 기업의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탄압 상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미 정가에선 큰 파장이 일었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가 만난 익명의 북한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구타와 성적 학대를 당한다고 증언했다. 2019년 말부터 2022년 5월까지 한국에 냉동 명태 내장 276.2t을 수출한 ‘다롄 하이칭 푸드’에서 일하고 있는 한 북한 여성은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에 “도망치다 잡히면 흔적도 없이 죽는다고 협박받았다”고 증언했다. 다른 여성 근로자는 “가장 끔찍하고 슬펐던 순간은 술을 마시는 파티에 끌려가 성관계를 강요당했을 때였다”라고 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회사가 고용한 보안 요원들의 상시 감시를 받으면서 하루에 18시간씩 일하지만, 한 달에 하루 밖에 못 쉰다고 이 단체는 밝혔다.
미 의회는 당시 “미국 소비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북한의 노동력으로 더럽혀진 제품에 노출되고 있다”며 즉각 수입 금지를 촉구했고, 상당수 기업들은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아웃로 오션 프로젝트 대표 이언 어비나는 지난 3일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의 강제 노동에서 나오는 수익은 바로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아이러니(역설적인 점)는 한국 소비자들이 벌어다 준 수익이 한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사이버 해킹이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인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2017년 북한 주민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수입하는 기업에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포함한 ‘적성국 대응제재법’(CAATSA)을 제정했다. 이를 근거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2022년 북한 노동자가 만든 중국산 수입품들을 미 전역의 항구에서 압류하고, 북한 노동자를 불법 고용한 중국 기업 세 곳에 대한 수입 제재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한국은 북한 주민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에 대한 수입 금지를 규정하는 별도의 법률이 없다. 다만 유엔 안보리 제재에 따른 개별 판단을 통해 제재를 부과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제재 위반 활동을 감시해 온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러시아의 반대로 최근 부결됨에 따라, 이런 국제 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강제 노동 실태를 직접 파악해 제재 필요성을 따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北 강제노동 수산물 한국 유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핵실험에 대응해 2017년 9월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통해 북한 노동자에 대한 유엔 회원국의 고용 허가 부여를 금지했다. 아울러 그해 말 채택된 2397호는 이미 일하고 있는 해외 북한 노동자의 경우 2019년 12월 22일까지 북한으로 모두 돌려보내도록 했다. 하지만 러시아·중국 등이 북한 노동자를 채용하는 정황이 이후에도 계속 포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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