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전기차 ‘속’은 뜨겁다

권재현 기자 2024. 4. 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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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블로그 캡처
전기차 판매 예전만 못하지만 부품 매출 전망은 ‘장밋빛’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스마트폰 부품 업체들까지 참전…배터리 가격 하락도 청신호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다지만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 업계는 ‘케즘(일시적 수요 둔화)’ 이후의 황금기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새로 뛰어들거나 물적 분할을 통한 집중과 선택 전략 대상으로 ‘2차전지’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속도의 문제일 뿐 방향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다.

7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동화 시대에는 내연기관차 중심 시대와는 부품의 개념 설정부터 범위, 규모까지 차원이 다른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부품 개수가 내연기관차의 50~60% 수준으로 확 줄어든다. 내연기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듈(부품세트)은 파워트레인이다. 엔진과 변속기 등의 구동력 담당 부품을 일컫는다. 자동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격 비중도 가장 높다.

이 밖에 3대 모듈로 불리는 칵핏모듈, 프런트 엔드 모듈, 섀시모듈이 있다. 칵핏모듈은 운전석에 앉았을 때 스티어링휠(핸들) 주변에 있으며, 운전자가 손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품 일체를 말한다. 프런트 엔드 모듈은 차량 전면부 범퍼 주변의 램프와 공조(라디에이터) 장치, 센서 등으로 이뤄진 부품이다. 섀시모듈은 승차감을 좌우하는 부품으로, 보통 앞바퀴와 뒷바퀴에 각각 달려 있다. 통상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러한 내연기관차의 부품 수를 2만5000~3만개 수준으로 추정한다. 전기차는 1만5000개 정도에 그친다.

현대모비스가 최근 개발한 반자동 충전 시스템. 충전 시작 단계에서 충전기를 꽂기만 하면 완충된 이후에는 충전기 회수와 충전 부위의 캡·커버 닫힘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현대모비스 제공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싼 부품은 배터리이다. 차량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정도 된다. 골드만삭스의 ‘배터리 가격 전망’(2024년 2월) 자료를 보면 지난해 킬로와트시(kWh)당 배터리 평균가는 150달러였다. 올해는 120달러, 2030년에는 70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됐다. 내연기관 차량의 파워트레인에 해당하는 구동시스템도 배터리만큼 전기차에서 중요한 영역이다. 모터와 감속기, 시스템을 제어하는 전자장치가 핵심 부품이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시장 전망 자료를 보면 2022년과 2030년을 비교했을 때, 글로벌 내연기관 부품 매출은 2190억달러에서 1460억달러로 급감하는 반면, 전기차 부품 매출은 1160억달러에서 5910억달러로 다섯 배 이상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레이크, 에어백, 램프, 서스펜션, 시트 등 (전기차와 내연기관에 모두 들어가는) 공통부품은 20% 가까이 성장한다고 나온다.

이에 따라 자동차 부품 업계는 요즘 지각변동 수준의 일대 변신 작업이 한창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부품을 주로 납품해온 LG이노텍·삼성전기 등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부품업체들이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LG이노텍은 애플 아이폰에 공급 중인 카메라 모듈을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카메라 모듈 등 차량용으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최근 IT용보다 전압을 대폭 높인 전장용 전류 제어 부품(MLCC)을 개발해 출시했다. 또 발수 코팅 기술과 난방 기능을 넣어 눈, 성에, 안개 등 기상 악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사계절 전천후 전장용 카메라 모듈을 연내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TV와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디스플레이 업계가 차량용 시장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는 횟수도 잦아졌다. 최근 전기차들은 각종 운행 정보와 콘텐츠를 보여주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중요해지면서, 액정표시장치(LCD)보다 화질이 좋으면서도 전력 소모가 적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선호하는 추세다. LG디스플레이는 메르세데스 벤츠, 볼보, 레인지로버, 재규어, 포르셰, GM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10곳에 차량용 OLED를 공급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슈퍼카 페라리에 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등 차량용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스마트폰 부품 업체들도 속속 전장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KH바텍은 최근 경북 구미에 자동차 부품 전용 공장을 준공했다. KH바텍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힌지(경첩)와 통신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2028년 연 320만대의 전기차 부품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열 관리 부문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배터리셀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전문업체가 만들지만 배터리를 어떻게 배열하고 제어하느냐, 열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비(1kWh당 갈 수 있는 거리)와 배터리의 수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가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고자 개발한 프런트 페이스 통합 모듈. 기존 내연기관 차량 앞부분의 그릴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공기 저항을 줄여 전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는 차량 앞부분의 그릴을 자동으로 여닫아 외부 공기를 유입시키고 배터리 냉각을 돕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를 통해 주행거리가 약 20㎞ 늘어난다고 현대모비스는 밝혔다. 현대위아는 전기차 전용 열관리 부품인 ‘통합 열관리 시스템(ITMS)’을 공개했다. 전기차의 모터와 배터리 등 주요 부품의 온도를 조절해주는 필수 부품이다. 현대위아는 2025년부터 ITMS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부품사들은 아예 반도체와 전동화, 소프트웨어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특화된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구동계, 열 관리, 자율 주행 부문 등에선 업체 간 특허 출원 경쟁도 치열하다.

권재현 기자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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