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친러' 대통령 당선…EU·나토와 노선 엇갈려(종합)
"EU·나토 외교 정책은 변하지 않겠지만 국익 생각할 것"
(서울·모스크바=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최인영 특파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이자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슬로바키아에서 친러시아 성향 대통령이 당선됐다.
작년 10월 총선에서 친러·반미 성향의 사회민주당(SD·스메르)이 승리해 정권이 교체된 데 이어 대통령도 친러시아 성향 인사가 차지했다.
슬로바키아 선거관리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페테르 펠레그리니 의회의장이 전날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53.1%의 득표율로 이반 코르초크 전 외무부 장관(46.9%)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펠레그리니 당선인은 2018년 3월∼2020년 3월 총리를 역임했다. 취임식은 6월 15일 열리며 임기는 5년이다.
그는 친러시아 성향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반대해왔다. 반면 코르초크 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다.
지난달 23일 대선 1차 투표에선 코르초크 전 장관이 42.5%를 득표해 1위에 올랐고 펠레그리니 당선인은 37.1%로 2위였다.
하지만 1차 투표 3위였던 극우 성향 스테판 하라빈 후보 등을 지지했던 유권자가 결선투표에서 대거 펠레그리니에게 표를 주면서 결과가 뒤집혔다는 게 현지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결선투표 투표율도 60%에 육박, 직전 대선보다 18%포인트나 높았다는 점도 펠레그리니 당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내각제인 슬로바키아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이고 실질적 권력은 정부 수반인 총리에게 있다.
그러나 서방 진영에서는 대통령이 법률 거부권을 활용해 총리를 견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슬로바키아의 대선을 예의주시했다.
현재 정부를 이끄는 사회민주당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는 취임 직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했고 우크라이나가 종전을 위해 러시아에 영토를 양도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EU와 엇갈렸다.
한때 피초 총리의 측근으로 꼽혔던 펠레그리니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슬로바키아는 친러시아 행보를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펠레그리니 당선인은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해 EU가 러시아에 통일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대러시아 제재가 슬로바키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면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효과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슬로바키아 국민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면서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 갈등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현지 RTVS 방송에 따르면 펠레그리니 당선인은 "슬로바키아가 EU와 나토에 공고히 뿌리 내리고 있음을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다. 아무도 우리 외교 정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들(EU, 나토)에서 우리는 더욱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경청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슬로바키아와 우리 경제, 국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떤 결정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EU와 나토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모든 방향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선 승리 선언 후 기자회견에서도 "정부가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하는 한, 과거처럼 대통령궁이 반대 세력의 중심이 돼 내각에 해를 끼칠 것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투표 전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슬로바키아 정치권이 '전쟁 지속'과 '평화협상 지지'로 분열됐다며 "나는 이중 후자에 속한다"고 말한 바 있다.
패한 코르초크 전 장관은 "솔직히 실망했다"면서도 패배를 인정하고 펠레그리니 당선인에게 축하를 전했다.
그러면서 "펠레그리니가 독립적이고 (누군가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 신념에 따라 행동할 것이란 내 믿음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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