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봄마다 잠깐 피는 ‘벚꽃 엔딩’
계란은 7분 삶으면 반숙란이 되는 게 공식이지만, 꽃 피는 시기는 공식이 없다. 기상 전문 업체도 자주 틀린다. 3월 말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열었던 지자체들은 축제 기간을 연장하며 꽃 피길 기다렸다. 전국이 핑크로 물든 지난 주말, 벚꽃 놀이로 한반도가 출렁였다. 벚꽃은 개화 시작 3일 후 만개하고, 그로부터 7~10일 후쯤 ‘꽃비’가 되어 떨어진다. 벚꽃 철, 길어야 2주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한국인의 ‘봄 캐럴’이라는 ‘벚꽃 엔딩’이 귀에 새겨지는 것도 바로 이때. 가수 장범준이 작곡, 작사한 이 곡은 2012년 3월 29일 발표 직후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꽃놀이하는 연인들을 질투하며 “꽃이 빨리 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벚꽃 엔딩’으로 제목을 지었다는데, 반대로 전 국민의 ‘야외 활동’을 부추기는 곡이 됐다. 발표 이듬해부터 ‘벚꽃 시즌’에만 역주행하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7일 현재,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톱 100′ 18위에 올랐다. 12년 전 노래의 대단한 기록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전국 4만3223㎞ 거리에 가로수 823만그루가 심겨 있다. 벚나무류가 가장 많아 150만그루가 훌쩍 넘고, 이어 은행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순이다. 일부에서 ‘벚꽃은 일제 잔재’라며 뽑아댔지만 소용없었다. 열매 악취로 밉상이 된 은행나무는 점점 줄고, 벚나무 이팝나무 회화나무 같은 화사한 수종이 가로수로 인기다.
▶'벚꽃 연금’이라는 말도 있다. 이 곡 저작권 수입이 ‘2015년까지 4년간 46억원’ ‘6년간 60억’ 이런 말이 있어서지만, 당사자는 액수를 말한 적이 없다. 노래 한 곡이 해마다 수억 원을 벌어주니 이런 고액 연금은 없다.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라는 가사의 ‘봄이 좋냐’(10cm 노래)라는 곡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딴지가 ‘벚꽃 엔딩’ 인기를 실감케 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봄은 서글펐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슬프지만 울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상징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백설희의 1954년 노래 ‘봄날은 간다’도 단조곡이 서글프다. 진달래꽃잎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는 것도 사는 집의 ‘봄 호사’였을 만큼 ‘춘궁기’는 혹독했다. 꽃이 피어 더 서럽던 계절을 살던 민족이 ‘핑크 벚꽃 축제’ 시대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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