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 여성 폭행’ 피해자·도와준 남성 “혐오범죄 법 개정을”

김정화 기자 2024. 4. 7. 21: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20대 남성 내일 1심 선고
피해자 ‘난청’ 평생 보청기 껴야…조력자 실직해 생활고
가해자 선처 호소에 “심신미약 안 돼”…피해 지원도 강조

지난해 11월 한 20대 남성이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했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편의점에서 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50대 남성은 여성을 돕다가 역시 폭행을 당했고 어깨와 이마, 코, 오른손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사건 이후 다섯 달이 지난 현재 두 사람은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대 여성 A씨는 왼쪽 귀에 난청이 생겨 평생 보청기를 착용하게 됐고, A씨를 도운 C씨는 직장을 잃고 생활고를 겪고 있다.

20대 남성 B씨는 ‘머리가 짧으니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A씨를 폭행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나 메갈리아는 좀 맞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수상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했고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은 9일 1심 선고를 내린다. 경향신문은 선고를 앞둔 7일 피해자 A씨와 C씨를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성별을 떠나 모든 혐오범죄 피해자가 법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진정한 사과도 없이 처벌을 피하려고만 하는 가해자가 큰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했다는 점에서 혐오나 편견이 동기가 된 ‘혐오 범죄’ 성격이 강하다. 검찰도 이 사건을 “혐오범죄로 규정하고 유사 사건을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에는 관련 법규가 없다.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은 관련 법에 따라 피해자를 명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지원할 수 있지만 A씨는 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규정되고 혐오범죄라는 폭행의 맥락은 고려되지 않는다. A씨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여성 혐오범죄와 제3의 피해자 지원법을 신설하자는 의견이 반영됐으면 좋겠다”며 “피해자는 도움을 받고, 가해자는 엄벌에 처해지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피해자는 B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처벌을 피하려고 해선 안 된다며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B씨 변호인 측은 지난해 첫 공판을 앞두고 ‘창창한 미래를 생각해달라’며 피해자들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A씨는 “B씨 변호사가 집행유예가 나오면 피해자들에게 월 20만원씩 보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너무 황당했다”며 “이 사건에는 피해자가 두 명이고 둘 다 큰 후유증을 겪고 있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선처 없이, 5년을 꽉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다섯 달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무력했던 자신의 모습”이다. A씨는 C씨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그는 “나를 돕기 위해 뛰어들었던 어른께 죄송하다”며 “그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함께 가해자를 저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도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사건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피하지 그랬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나도 딸 키우는 아빠인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느냐”고 했다. 이어 그는 “만일 그때 모른 척했다가 나중에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사건을 뉴스에서 봤다면 더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라며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도왔더라면 보청기를 끼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더 빨리 돕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은 범죄 이후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당장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비,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이 가장 큰 도움이 되겠지만 다시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상담이나 자활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씨에 대해 A씨는 “정의의 대가가 생활고라니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난다”며 “그분이 복직하거나 재취업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이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최근 짧게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있다. 시력이 한번 떨어지면 회복할 수 없듯 청력도 마찬가지다. A씨는 더 이상의 청력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 보청기를 끼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를 돕다가 다친 피해자 어른께 가장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돕지 않으셨다면 저의 오늘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매일매일 하루씩 버텨내고 이겨내며 살고 있습니다. 절대 지지 않겠습니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