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꽃밭에서
봄꽃은 기습적으로 핀다. 잠깐이라도 해찰하면 어느새 피었다 지는 게 봄꽃이다. 정훈희(사진)는 흐드러진 봄꽃을 몽환적으로 노래한 몇 안 되는 가수다. 작곡가 이봉조는 탐내는 가수가 많은 ‘꽃밭에서’를 정훈희에게 줬다. 대마초 사건 후 재기를 노리던 그를 위한 배려였다. 1978년 발표 후 단숨에 히트곡이 됐다.
정훈희는 언젠가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서 꼭 불러보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꽃밭에서’는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했다. 1994년 조관우가 맨 먼저 불렀고, 가수 소향, 소프라노 조수미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정갈하면서도 간결한 노랫말이 멜로디와 잘 어우러지고 정훈희의 목소리와 만나 봄날의 절정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를 둘러싼 표절 시비는 흠결이 아닐 수 없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종택 작사로 돼 있는 이 노래의 가사는 조선시대 이조참판과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최한경(崔漢卿)의 한시와 거의 흡사하다. “좌중화원(坐中花園·꽃밭에 앉아서)/ 첨피요엽(瞻彼夭葉·꽃잎을 보네)/ 혜혜미색(兮兮美色·고운 빛은)/ 운하내의(云何來矣·어디에서 왔을까)/ 작작기화(灼灼其花·아름다운 꽃이여)/ 하피염의(何彼艶矣·어찌 그리 농염한지)/ 사우길일(斯于吉日·이렇게 좋은 날에)/ 길일우사(吉日于斯·이렇게 좋은 날에)/ 군자지래(君子之來·좋은 이 오신다면)/ 운하지락(云何之樂·얼마나 좋을까)”
그의 문집 <반중일기(泮中日記)>에 실려 있으며 성균관 유생 시절, 고향 처녀를 연모하는 마음을 담아 쓴 시로 알려졌다. 꽃을 보는 마음이 비슷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똑같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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