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과잉생산’ 둘러싼 힘겨루기 본격 시작…얼마나 생산하길래[뉴스분석]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미국이 제기한 중국의 ‘제조업 과잉생산’ 문제를 두고 미·중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태양광·풍력 발전설비,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산업 분야와 온라인 쇼핑몰 테무 등을 앞세운 저가 소비재 시장에서 중국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현상에 대한 힘겨루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7일 중국 베이징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을 하고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거론하며 이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옐런 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양국의 복잡한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며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양자 관계를 보다 안정적인 기반 위에 올려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 총리는 미·중 양국이 적이 아닌 동반자가 돼야 한다는 종전 입장을 반복하면서 옐런 장관의 방문으로 건설적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중국 국무원도 이날 회담 이후 낸 성명에서 “중국이 미국의 경제·무역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생산 능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옐런 미국 장관은 전날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광저우에서 이틀간 회담하면서 세계 경제의 균형적 성장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논의는 지난해 양국이 설립한 ‘중·미 경제금융 실무그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미·중 양측이 이 문제를 양국 간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문제’라는 틀에서 다루기로 한 것이다.
옐런 장관은 지난 4일 광저우에 도착해 엿새간의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그의 방중은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 만이다. 광저우는 중국의 제조업과 수출의 중심지이다. 옐런 장관이 이 지역을 방문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제조업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규제를 넘어서 과잉 생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세를 ‘기술패권’으로 규정할 경우 미·중 간 문제가 되지만 ‘과잉생산’은 글로벌 차원의 문제로 유럽연합(EU) 등을 논의에 끌어들일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 따르면 중국의 자국 내 태양광 발전 수요는 36.4%이지만 전체 태양광 설비 수출 시장의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세계 풍력 에너지 위원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2022년 기준 전 세계 설치 용량의 거의 60%를 공급했다. 2007년 세계 신재생 에너지의 30%를 공급하던 유럽은 이 과정에서 관련 산업이 무너졌다. 중국은 전 세계 배터리 수출의 약 50%를 차지하며 전기차 수출 점유율도 47%를 넘어선다.
중국도 이 문제를 ‘글로벌 차원’으로 가져가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는 지난 5일 공개된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과잉 생산력’이 다른 나라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고품질의 산업 역량과 새로운 품질의 생산력은 과잉이 아니라 심각한 부족 상태에 있다”며 “중국의 녹색 역량 덕분에 개발도상국은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 녹색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잉 생산 문제는 중국이 경제 정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중국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하게 쏟아부은 자금은 부동산과 산업생산 설비로 몰렸다. 산업 시설마다 막대한 생산능력을 갖게 됐다. 중국은 자국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등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중국 내 경쟁이 과열되면서 중국 업체들은 저가 경쟁을 벌이면서 수출로 눈을 돌렸다. 중국 제조업체는 2015년 이후 전 세계 수출의 약 3.5%를 공급하던 수준에서 2022년에는 20%를 도맡았다.
다만 싱가포르의 중국어 매체 연합조보는 “전기차의 경우 중국산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며 신재생에너지와 달리 중국이 과잉생산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차세대 제조업 기지를 노리는 인도와 베트남은 지난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중국은 첨단산업 투자를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무역에서 ‘사면초가’ 상황에 몰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중 회담에 적극 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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