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50대男이 알·테·쉬 중독돼 보니

고재만 기자(ko.jaeman@mk.co.kr) 2024. 4. 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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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커머스 '테무'를 처음 접한 것은 석 달 전이다.

명색이 중소기업·소상공인 담당 기자라는 인간이 고물가 시대에 합리적 소비를 하고 있다는 순간의 만족감에 취해, 중국 이커머스 침투로 폐업 위기에 몰린 국내 업계의 절박한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못했다.

내수 시장이 중국에 완전 종속되는 것을 막고 국내 중소기업·소상공인 생태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획기적인 접근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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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본 적 없는 압도적 가성비
직접 써보니 빠져들 수밖에
국내 대기업들도 앞다퉈 입점
소상공인 버틸 수 있을지 걱정
정부, 과거완 다른 접근 절실

중국 이커머스 '테무'를 처음 접한 것은 석 달 전이다. 운동화 끈을 사려고 했는데 새벽배송을 해주는 국내 대표 온라인몰에서 한 쌍에 6900원이었다. 좀 비싼 거 같았다. '알·테·쉬(알리·테무·쉬인)'를 여태 몰랐어?'라고 친구가 핀잔을 주길래 바로 앱을 깔고 검색해 봤다. 거의 동일한 상품이 1690원이었다. 배송은 7~10일 걸린단다. 당장 급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다. 무료 배송을 받으려면 최소 구매금액 1만3000원을 채워야 했다. 3포트 USB 허브, 욕실용 헤어드라이어 걸이, 스포츠 양말 3켤레를 추가 구매했다. 평소라면 굳이 사지 않았을 물건이다. 그래도 물건 4개를 합친 가격이 1만5860원. 가격을 보니 알뜰한 소비를 한 것 같아 스스로 뿌듯했다.

이때부터 알·테·쉬 중독이 시작됐다. 매일 출퇴근 버스 안에서 나만의 쇼핑몰이 펼쳐졌다. 칫솔 살균기, 운동화 건조기, 구두 깔창, 태블릿PC 스탠드까지. 없어도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물건이지만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현혹돼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로 클릭을 해댔다. 어느새 장바구니에는 50개가 넘는 물건이 담겼다. 가성비를 빙자한 '지름신'이 씐 게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안 좋다. 중국 이커머스 공습에 국내 유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사이 국내 중소기업·소상공인은 생존 위기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있었다.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때마침 지방에서 20년 넘게 양말 공장을 하는 사장님과 통화가 됐다. 국내 양말 공장의 3분의 1 이상이 코로나19 팬데믹 때 문을 닫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더 안 좋다며 본인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알리'에서 양말 10켤레가 3000원밖에 안 하길래 살까 말까 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죄책감이 들었다. 명색이 중소기업·소상공인 담당 기자라는 인간이 고물가 시대에 합리적 소비를 하고 있다는 순간의 만족감에 취해, 중국 이커머스 침투로 폐업 위기에 몰린 국내 업계의 절박한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못했다.

차량용 진공청소기를 만드는 한 사장님은 "1년 새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우리 제품은 원가가 1만원인데 알리는 비슷한 제품을 5000원대부터 판매하니 경쟁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두께 0.7㎜의 얇은 스마트폰 케이스로 한때 날렸던 중소기업 사장님은 "우리는 중국에서 제조해 한국으로 들여오는데 세금과 물류비를 감안하면 중국 직구로 들어오는 제품과 가격 경쟁력에서 게임이 안 된다"며 "이런 식이면 국내 소비재 시장은 '메이드 인 차이나'에 점령당할 일만 남았다"고 우려했다. 이런 하소연을 듣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알·테·쉬 앱을 지워 버렸다.

그동안 국내 소비자들은 중국 이커머스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해 직구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인지도 높은 국내 대기업들도 중국 이커머스에 앞다퉈 입점하면서 중국산 제품에 거부감을 보여왔던 소비자들도 이젠 이용이 일상화됐다. 전문가들은 저가 상품을 시작으로 공산품을 거쳐 결국에는 먹거리까지, 시간문제일 뿐 중국 이커머스의 내수 시장 잠식은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짝퉁 사기, 환불 불가, 개인정보 침해 등에 대응하기 위한 소비자 보호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언감생심이다. 내수 시장이 중국에 완전 종속되는 것을 막고 국내 중소기업·소상공인 생태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획기적인 접근을 강구해야 한다. 역대 정권마다 내놨던 '중소 제조업 경쟁력 강화' 같은 뻔한 거 말고 말이다.

[고재만 벤처중소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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