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1찍과 2찍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4. 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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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2찍'(보수 지지자)이었다.

맹목적으로 한 당만을 지지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전라도 사람이 일은 잘하지라"라며 능청을 떨면서도, 그날 밤 아버지는 쪽방 한편에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어떤 정치인은 절박한 그들을 '1찍', '2찍'이라며 혐오의 언어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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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2찍'(보수 지지자)이었다. 맹목적으로 한 당만을 지지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듣고 난 다음부터였다. 1958년 첫아이를 낳았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밥에 고깃국은 고사하고 두더지를 잡아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아이에게 줄 것은 당연히 없던 시대. 배가 고파 마냥 우는 아이에게 그는 메마른 젖을 물렸다. 아이는 울다 잠들었다. 그 역시 허기진 아이를 품에 안고 울며 잠들었다고 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아기의 굶주림은 어머니에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혁명'이라는 것이 일어났을 때, 그는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것. 일하면 일할수록 자식에게 더 좋은 기회가 간다는 것. 2021년 눈을 감을 때까지 그는 '2찍'이었다. '박정희'는 희망의 상징이었고, 표는 언제나 보수당을 향했다. 돌배기 아이를 키우는 지금에서야 그의 '맹신'를 조금은 이해한다. 굶고 있는 아기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인물이라면 나는 전광훈에게라도 표를 던질 것이다. 아버지는 '1찍'(진보 지지자)이었다. 1982년 전라도 고창에서 서울로 상경해 서점에서 일자리를 구하던 때였다. 서울 고용주가 아버지에게 처음 건넨 말은 "전라도 출신을 어떻게 믿나"였다. "그래도 전라도 사람이 일은 잘하지라"라며 능청을 떨면서도, 그날 밤 아버지는 쪽방 한편에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아들이 탄 서울행 버스를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노모의 모습이 천장에서 사라지지 않아서였다. 고졸의 젊은이는 '전라도'라는 낙인을 이고서도 모든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냈다. 굶기지 않아야 할 아내와 두 아들이 있어서였다. 그에게 '김대중'은 전라도 사람도 능력대로 대우받는 세상에 대한 기대치였다.

어떤 정치인은 절박한 그들을 '1찍', '2찍'이라며 혐오의 언어로 불렀다. 나는 그들을 대한민국의 소신 있는 유권자, 위대한 밀알이라고 부른다. 나의 아버지, 나의 할머니라고 부른다. 나의 표는 혐오의 정치인에겐 향하지 않을 것이다. 4월, 다시 선거의 시간이 찾아왔다.

[강영운 사회부 penka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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