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대사관 담 넘은 에콰도르 경찰…양국 외교 단절에 중남미 ‘긴장’
에콰도르 경찰이 자국 내 멕시코 대사관을 강제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지난 5일(현지시간) 벌어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멕시코는 에콰도르와 단교를 선언했고,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이미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인 중남미 외교가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밤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멕시코 대사관 앞에 경찰 차량이 등장했다. 대문을 들이받고 내부로 진입한 경찰은 한 남성을 끌고 나와 체포했다.
붙잡힌 남성은 호르헤 글라스 에콰도르 전 부통령으로, 과거 좌파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16년 발생한 대형 지진의 피해 복구비를 횡령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주에콰도르 멕시코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국제법과 멕시코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비판하며 에콰도르와 외교를 단절한다고 밝혔다. 에콰도르 대통령실은 성명을 내고 “(멕시코 측이) 부통령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통상적인 법적 절차에 반해 망명을 허용한 것은 외교사절단에 부여된 면책특권을 악용한 것”이라고 맞섰다.
중남미 주변국들은 한목소리로 에콰도르를 비판했다. 니카라과는 멕시코에 이어 에콰도르에 국교 중단을 선언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페루, 베네수엘라, 쿠바, 칠레 등 중남미 국가들은 규탄 입장을 밝혔다. 국제법상 각국의 대사관은 치외법권으로 규정돼 있으며, 대사관 강제진입은 권위주의 정부가 대다수인 남미 지역에서도 ‘외교적 금기’로 여겨진다.
일각에선 이념에 따른 양극화가 이미 심한 중남미에서 외교적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최근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 왔다. 이번 갈등도 전날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노보아 대통령의 당선을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해 에콰도르 정부가 주에콰도르 멕시코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면서 불이 붙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중남미의 좌파 정부들과 우파 성향의 정치인들은 심한 갈등을 겪어 왔다”면서 “이번 사태는 좌우로 분열된 중남미 지역에 외교 위기를 촉발시켰다”고 분석했다.
양국 대통령이 각자의 목표에 매몰돼 외교적 갈등 관리에 실패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에 대해서는 보수 정권에 대한 반감에 사로잡혀 외교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는 지난해 페루와 볼리비아의 우파 정권에도 공격적인 발언을 계속해 두 나라의 대사가 모두 철수한 바 있다. AP통신은 “우파 정권이 늘어난 최근의 중남미 정치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치안 성과를 올리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치안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과거 정치세력과도 강하게 대립해왔다. 부패 척결을 내세워 이전 정권과 대립해 온 미국외교협회의 라틴아메리카 연구원인 윌 프리먼은 “선거를 앞두고 인기를 높이기 위해 법치주의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와 에콰도르의 갈등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멕시코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온두라스는 중남미 3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회의를 긴급 소집해 이 사안을 논의할 것을 요청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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