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지막 산업단지, 문래동 기계공의 하루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4. 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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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대부분의 공장은 10~20평 정도 되는 오래된 주택에 금속가공에 필요한 기계와 장비를 들여놓고 일을 한다. 윤주성 사진작가

전희순 | 1인 소공장 운영

아침 출근길, 일터 앞 슈퍼마켓을 지나려는데 골목이 시끄럽습니다. 얼핏 보니 영화나 드라마 촬영 중인가 봅니다. 몇년 전부터 문래동에서 가끔 마주치는 풍경입니다. 어떤 촬영을 하는지 호기심이 살짝 생기지만 출근이 늦은 관계로 궁금증을 뒤로하고 일터를 향해 걸음을 재촉합니다.

일터에 좀 늦게 도착했습니다. 지각입니다만, 늦었다고 눈치 주는 사람은 없네요. 혼자 일하는 사업장이라 그렇습니다. 문래동에 있는 공장 대부분은 1인 기업이거나 가족과 함께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입니다. 10평에서 20평 정도 되는 오래된 주택에 금속가공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계와 장비를 들여놓고 일을 합니다.

아무리 작은 부품이라도 완성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문래동은 각 공정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공장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업체들끼리 잘 연결된 네트워크 덕분에 소재부터 최종 완성품에 이르는 과정이 원스톱으로 가능합니다. 경기가 한창 좋았을 때는 3천여개의 사업장이 문래동 일대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1230여개의 기계금속 관련 사업장이 문래동에 있다고 합니다.

기계 전원을 올리고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기계를 예열하는 동안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작업할 도면을 살펴봅니다. 도면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작업 방법과 가공 순서를 정합니다. 가공 공정마다 어떤 공구를 쓸지, 재료를 고정하기 위한 지그(jig, 보조용 기구)도 어떤 게 좋을지 정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면을 한번 더 들여다봅니다. 도면의 지시 사항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작업하다 낭패를 당한 경험 때문입니다. 평소 성격과 상관없이 일을 대할 때는 차분하고 꼼꼼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가 뒤따르니까요.

준비가 끝났으면 프로그램을 짜고 기계를 세팅합니다. 제가 다루는 기계는 엔시(NC)공작기계입니다. 가공물과 공구를 세팅하고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가공해주는 기계입니다. 수동 공작기계에서 하기 어려운, 정밀하고 복잡한 형상을 가공할 수 있습니다.

철공 일을 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기계 앞에서는 늘 긴장합니다. 아무리 숙련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칫 실수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혼자 일하는 중에 사고를 당하면 당장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더 큰 일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합니다. 사실, 준비만 잘해놓으면 그다음은 어렵지 않습니다. 작업공정을 잘 관리하고 그것에 맞게 정해진노동을 하면 됩니다.

오후에는 필요한 재료와 공구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섰습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많이 변해버린 풍경과 마주칩니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공장이 있던 자리는 음식점과 카페, 술집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방송과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자주 소개되더니 어느새 서울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네요. 오래되고 낡은 공장이 있는 거리가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갔나 봅니다. 우리의 뜻과 상관없는 이런 변화는 참 곤혹스럽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여기에 재개발 이슈까지 더해져 공장들이 빠른 속도로 밀려나는 중입니다.

예술인들이 문래동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변화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비록 불편하긴 했지만,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잘 지내고 있었거든요. 어차피 낮은 철공인, 밤은 예술인의 시간이었으니 부딪칠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술인들과 협업을 한다면 침체된 철공단지에 활기를 주지 않을까도 기대했습니다만, 현실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네요. 이 도시에서 작은 공장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문래동 공인들이 가진 기술적인 자산가치가 세월과 함께 없어질 것 같습니다.

문래동과 같은 처지에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일본 도쿄 오타구의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문래동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 마을공장을 이전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남은 공장들이 마을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공장들은 지역사회와환경 개선에 공헌하고 마을은 그런 공장들에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상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 공장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이제 퇴근입니다. 아침에 늦게 와놓고 일찍 가려니 너무 좋습니다. 골목 사이로 비치는 노을이 몽글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정든 퇴근길입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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