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도서관…책과 공간을 잇다, 지역과 사람을 잇다

황지원 기자 2024. 4. 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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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도서관] 강원 인제기적의도서관을 가다
둥근 원통형 모양 서가에 책 한가득
천장에 난 창문으로 자연광 들어와
확장현실 활용 미술작품 관람하고
계단식 열린 극장서 북토크 등 즐겨
지역 특색 살린 미디어아트실 주목
아이·부모 함께 주말나들이로 방문
타지역서도 찾아와 지역경제 보탬
2023년 6월 문을 연 강원 인제기적의도서관은 독특한 구조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개관 6개월 만에 방문객 5만명을 기록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벽면을 빼곡히 감싼 책장이 눈에 띈다. 인제=백승철 프리랜서 사진기자

문화 취약지역인 농촌에서 도서관은 책을 읽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민들이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은 물론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 된다. 또 방문객들에게는 지역을 이해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강원 인제에 문을 연 ‘인제기적의도서관’은 개관 6개월 만에 인제지역 인구수 3만명을 훌쩍 넘는 5만명이 방문했다. 도서관이 지방소멸을 극복하는 기적을 낳고 있는 셈이다. 이 기적의 현장을 보고자 인제로 향했다.

천장에 나 있는 창문 덕에 햇살이 도서관 내부를 가득 채운다. 인제=백승철 프리랜서 사진기자

네모난 건물에 네모난 책꽂이, 앞뒤로 빼곡히 들어선 네모난 책상과 책들. 도서관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모습이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건물 모양부터 이런 편견을 깨트린다.

도서관 메인 건물은 원통형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둥근 벽면을 가득 메운 책이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책들은 방음 기능과 함께 그 자체로 책을 보존한다는 것에 의미를 지닌다. 천장에는 창문이 나 있어 햇살이 도서관을 채운다. 창틀과 태양광 패널의 그림자가 도서관 바닥에 시시각각 바뀌는 무늬를 만들어낸다. 둥근 홀 가운데엔 계단식 책상을 둬 이용객들이 자연 채광 상태로 책을 읽거나 공부하도록 했다. 인제읍에 사는 김수민씨(25)는 “고향에 와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도시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멋진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다”며 “더구나 탁 트인 공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취업 준비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확장현실(XR) 뮤지엄에선 조이스틱을 이용해 실제 미술관을 걸어 다니는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 인제=백승철 프리랜서 사진기자

인제기적의도서관 곳곳엔 기존 도서관에서 볼 수 없었던 재미를 갖춘 최첨단 공간이 많다. 1층 한쪽에 있는 확장현실(XR) 뮤지엄 내 텔레비전 화면엔 실제 같은 미술관이 펼쳐진다.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화면 속 미술관 안을 걸어 다니다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하면 헤드셋에서 자세한 작품 설명이 나온다.

1층 홀에서 내려가는 방향으론 계단식 열린 극장이 있다. 계단 끝에 위치한 무대에선 북토크나 명사의 강연이 열린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바꿨다. 2층엔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는 방이 6개나 있다. 각 방에는 주제가 있는데 ‘음악 스튜디오’에선 전자피아노로 연주를 할 수 있고, ‘미술 스튜디오’엔 큰 테이블이 있어 도화지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기 좋다. 지역주민이 모여 동아리활동으로 교류하며 ‘마을주민’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한다.

미디어아트실에선 빔프로젝터를 통해 인제 자작나무 숲이 방 안 가득 펼쳐진다. 인제=백승철 프리랜서 사진기자

특히 인제기적의도서관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지역 정체성도 한껏 살렸기 때문이다. ‘인제니아’라는 공간 속 모니터에선 인제의 생태·문화, 인제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을 다룬 영상이 상영된다. 지역주민과 멀리서 온 관람객 모두에게 인제가 어떤 곳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미디어아트실에선 빔프로젝터를 통해 인제 자작나무 숲과 설악산의 모습이 벽 전체에 펼쳐져 자연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심민석 관장은 “도시에 사는 아이들과 달리 미디어아트를 경험할 기회가 적은 인제 아이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라며 “인제의 자연 풍경을 보여줘 더욱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진행하는 도서관 건립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이상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와 건축사무소에 도서관 설계를 의뢰한 후 완성된 설계를 기증했다.

인제군은 군비에 국비와 도비를 더한 180억원을 투입해 2019년 7월 1만㎡(3000평) 부지에 건축 연면적 3000㎡(906평) 규모의 도서관 설립에 나섰다. 건축 시공 3년 반만인 2022년 12월 비로소 도서관이 완성됐다. 올 2월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는 인제기적의도서관을 도서관 부문의 한국문화공간상에 선정했다.

인제니아’에선 인제의 생태·문화를 영상으로 보여주며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인제=백승철 프리랜서 사진기자

인제기적의도서관이 생기기 전엔 어린아이를 둔 지역주민들은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아 차를 타고 인근으로 갈 때가 많았다. 이젠 아이와 부모 모두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주말을 보낸다. 이뿐 아니라 작은 음악회, 어린이 인형극 등 다양한 공연을 열어 문화생활에서 소외되기 쉬운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멀리 사는 사람들도 불러 모은다. 이들은 도서관에 갔다 인제에 있는 다른 관광지와 식당을 들르며 지역경제에도 힘을 불어넣는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지방소멸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확충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도서관 건립은 지역을 아이 키우기 좋은 곳,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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