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중국 손잡자 안보리 15년 대북제재 무너졌다
“발사 구령이 떨어지자 천둥 같은 폭음 소리가 하늘 땅을 뒤흔들고 세차게 내뻗는 불줄기가 지면을 뜨겁게 달구며….”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4년 4월2일 신형 중장거리 고체 탄도미사일 ‘화성포-16나’형 첫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했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통신은 “평양시 교외의 군부대 훈련장에서 동북 방향으로 발사된 미사일에서 분리된 극초음속 활공 비행 전투부는 예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비행해 사거리 1000㎞ 계선의 조선 동해상 수역에 정확히 탄착됐다”고 덧붙였다.
북, 제재 아랑곳 않고 무기체계 고도화
통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화성포-16나’형은 △고체연료 △극초음속 △중장거리 미사일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면 발사 준비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이동식 발사대(TEL)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발사가 가능하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통상 마하 5(초속 1.5㎞) 이상으로 비행한다. 탄두가 추진체(미사일)에서 분리된 뒤에는 불규칙한 궤적으로 비행해 탐지·추적·요격이 어렵다. 북쪽이 말하는 ‘중장거리 미사일’(IRBM)은 사거리가 3000~5500㎞에 이른다.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평양에서 각각 약 1450㎞와 3400㎞ 떨어진 일본 오키나와와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다. 두 곳 모두 미군기지가 몰려 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 행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다. 안보리는 2013년 1월22일 채택한 결의 2087호부터 “북한이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를 하면 추가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이른바 ‘방아쇠(트리거) 조항’을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할 때마다 명문화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2397호·2017년 12월22일) 이후 북의 탄도미사일·정찰위성 등 발사가 이어졌음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속에 안보리는 추가 제재 결의를 채택하지 못했다. ‘트리거 조항’ 무력화는 안보리의 기능 마비를 상징한다.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9일) 때 시작됐다. 안보리는 닷새 뒤인 10월14일 북한에 대한 재래식 무기류와 사치품 금수 조처를 뼈대로 한 첫 대북제재 결의(1718호)를 채택했다. 특히 결의 제12항은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 점검하기 위한 안보리 차원의 위원회(1718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또 제15항은 북한의 대북 제재 이행 상황에 따라 기존 제재 조처를 강화·수정·중단·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른바 ‘가역 조항’이다.
북한은 2009년 5월25일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안보리는 6월12일 결의 1874호를 채택해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1718위원회 활동을 지원할 전문가 패널(26항)을 구성하기로 했다. 대북제재 이행 과정을 감시·분석해 연간 두 차례 위원회에 보고하는 게 임무다. 패널의 활동 시한은 1년이며, 시한을 넘기기 전 새 결의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그간 14차례 활동 시한을 연장했다. 올해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러시아 앞장서고 중국이 동조
안보리는 2024년 3월28일 회의를 열어 전문가 패널 활동 시한 연장을 위해 미국이 낸 결의 초안을 논의했다. 로버트 우드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는 “지난해 북한은 안보리 결의를 여러 차례 위반하고,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렸다”며 전문가 패널 활동 시한 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반도 주변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체제는 핵무기 확산 방지란 숭고한 의도에서 나왔지만, 더는 시의적절하지 않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제재 체제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전문가 패널은 파괴적인 서방 대북정책의 도구이자 왜곡된 정보를 재생산하고 언론보도나 분석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어 네벤자 대사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연간 단위로 부과하고 그 효과를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가역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전문가 패널 활동 시한 연장 결의안은 찬성 13, 반대 1, 기권 1로 부결됐다. 기권표를 던진 중국 쪽은 겅솽 주유엔 차석대사 명의로 낸 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대북제재는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지난 10여 년간 가혹한 대북제재로 긴장과 대립만 심화시키고 북한 인민의 인도적 상황만 악화했다. 제재는 고정적이어도, 무기한이어도 안 된다. 중국은 러시아의 ‘가역 조항’ 발동 주장을 적극 지지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의 자발적 비핵화 조처에 맞춰 ‘가역 조항’에 따라 일부 대북제재를 중단·해제해야 한다고 지속해서 주장해왔다. 겅솽 차석대사도 성명에서 “교착국면을 타개하고 북한의 대화 참여를 끌어내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새삼 강조했다.
러시아가 앞장서고, 중국이 동조했다. 결의 2397호(2017년 12월22일) 채택 이후 되풀이하며 안보리를 무력화시킨 방식이다. 전문가 패널마저 활동을 종료하게 됐으니 안보리는 기존 대북제재 이행도 강제할 수 없게 됐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그간 새로운 대북제재를 부과하지 못하던 안보리가 전문가 패널 활동시한 연장 실패로 과거 제재를 강제할 수단마저 잃게 됐다.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체제가 무너졌다고 할 만하다”고 짚었다.
사라진 소통, 사라진 대북 지렛대
안보리는 손발이 묶였다. 북쪽과 아무런 교류가 없는 한·미·일의 제재는 북쪽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에서 “첨단무기 개발 투쟁에서 계속적인 비약과 혁신을 일으킬 데 대한 전략적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탄도미사일 추가 시험발사가 이어질 것을 예고한 셈이다.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풀려면 차이가 있더라도 소통해야 한다. 한·미·일의 공감대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북과 한-중·한-러 간에 외교가 작동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해양과 대륙의 교량 국가, 완충 국가다. 한쪽을 떼고 국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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