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진도 놀랐다, 클린턴이 DJ 만찬 후 열린음악회 달려간 이유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2024. 4.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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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1회>]
경호 장치 전혀 없는 세종문화회관에 자정 가까이 나타나
무대에서 무명 가수 동생과 포옹하고 손 흔들어
1998년 11월 21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녹화된 KBS 열린음악회 '한미 우정의 콘서트'에서 가수인 동생 로저 클린턴의 어깨에 오른손을 두르고 기립박수를 보내는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조선일보 DB

<연재를 시작하며>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 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을 역임하며 외교·안보 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그간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주요 사안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매주 일요일 방영되는 인기 프로그램 ‘KBS 열린음악회’에 무명 가수인 자신의 동생을 격려하기 위해 출연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1993년 시작된 KBS 열린음악회는 4월 현재 1472회를 기록 중인데,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아무런 예고 없이 녹화장에 등장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1998년 11월 21일(토) 당시 사회부 기자로 일할 때 데스크에서 지시가 왔습니다. 방한 중인 클린턴 대통령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KBS 열린음악회 녹화 현장에 출연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니 취재하라는 겁니다. KBS는 클린턴 방한에 맞춰 ‘한미 친선을 위한 우정의 콘서트’를 개최하며 그의 동생 로저 클린턴을 초청했습니다. 형보다 앞서 방한한 로저가 자신의 한국 일정을 담당하는 측에 “우리 형이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내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다”고 한 사실이 본지 취재망에 포착된 겁니다.

로저는 사실 미국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무명 가수에 가까운데 한미 관계를 위해 공영방송 KBS가 특별 대우를 했습니다. 클린턴은 자신의 이부(異父) 동생 로저를 끔찍이 아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자서전 ‘My Life’에 클린턴 형제의 돈독한 관계가 묘사돼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현대그룹을 통해 그동안 금기시된 남북 인적·물적 교류를 시작했는데, 클린턴의 호감을 얻기 위해 로저의 출연이 기획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날 제 임무는 KBS 열린음악회에 클린턴이 출연할 경우, 이를 취재해 시내판 마감 전에 송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진부에서는 채승우 기자를 보내줬습니다. 그런데, 당시 청와대와 외교부에 확인해보니 클린턴 일정 중 세종문화회관 방문은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이날 저녁 늦게까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및 만찬이 예정돼 있어 취재원들에게서는 “클린턴이 그곳에 갈 시간이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정말 클린턴이 올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 가운데 토요일 저녁에 ‘뻗치기 취재’하는 것을 투덜거리며 공연을 봤습니다. (당시는 일요일 자 신문이 발간될 때입니다.)

저녁 8시쯤 시작된 열린음악회는 주한미군 군악대, 사물놀이패도 나오면서 흥겹게 진행됐습니다. 로저가 등장해 팝송을 여러곡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가 셰이키 어라운드(Shaky Around)라는 것은 그다음 날 청와대 발표로 알았습니다. 로저는 인순이, 조영남씨와 함께 한국에 ‘물레방아 인생’으로 번안된 ‘Proud Mary’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콘서트가 저녁 10시를 넘겼는데도 끝나지 않아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곧 시내판 기사 마감인데….” 그때 노래를 몇 곡째 잇달아 부르던 로저가 10시 40분쯤 객석을 향해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입니다. 나의 형 클린턴 대통령을 소개합니다.”

그러자 수행원과 경호원 약 30여 명에게 둘러싸여 무대 옆에 나타난 클린턴 대통령이 관객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왔습니다. 객석에서는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지난 1998년 11월 21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을 갖기에 앞서 건배를 하고있다./연합뉴스

클린턴은 무대 중앙에서 동생 로저를 힘껏 껴안았습니다. 관객들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무대 뒤편의 관현악단 단원들에게 손을 흔든 클린턴은 무대 옆으로 가더니 10여 분간 더 동생의 노래를 들은 후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상황을 취재해보니 클린턴의 세종문화회관 방문은 사전에 우리와 협의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클린턴은 이날 저녁 10시가 넘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만찬이 끝나자 갑자기 “동생이 출연 중인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는 겁니다. 미 대통령이 자신의 동생을 보러 가겠다는데, 이를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클린턴의 ‘돌발 행동’에 몹시도 당황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 미 대통령 방문에 대비한 특수 경호 장치가 없었기에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만약 클린턴의 방문이 비밀리에라도 예정돼 있었다면 그날 경호가 그렇게 허술했을 리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취재가 미 대통령이 나오는 행사 취재입니다. 워싱턴 특파원 때 수차례 경험했지만, 미 대통령 행사에 참석하려면 사전에 신원 확인을 거치게 됩니다. 현장에선 검색대를 몇 차례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날은 이런 까다로운 절차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클린턴이 경호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왔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에 한미 관계의 저울추가 미국으로 많이 기울어 있던 시대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P.S.]

#1 이날 무대 뒤편에 앉아 있던 저는 클린턴이 무대 가운데로 나오자 좀 더 가까이서 취재하기 위해 앞쪽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때 클린턴 경호원들이 일제히 저를 쏘아보며 오른손이 양복 안쪽으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즉각 멈춰 섰습니다. 자칫 암살범으로 몰려 총을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 들었기 때문입니다.

#2 자정 무렵 마감하는 시내판 조선일보에 클린턴 형제 관련 기사를 넣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속력으로 조선일보 편집국까지 뛰어갔습니다. 약 3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채승우 기자는 클린턴이 로저의 어깨에 오른손을 두르고 왼손을 흔드는 장면을 정확히 포착, 편집부로 넘겼습니다. 이 기사는 다음 날 본지에만 실렸습니다. KBS 열린음악회 특집방송은 본지 보도가 나온 22일 오후 저녁에 방영됐습니다.

<클린턴 방한 에피소드 2편은 다음 주 일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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