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전쟁이 BTS, 뉴진스팬들의 치열한 논쟁 장소가 된 이유는?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 2024. 4. 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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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다이어리] 트랜스내셔널 팬덤의 행동주의와 가자지구 전쟁

커피전문점 체인 스타벅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벌어진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지목돼 불매 운동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스타벅스 노동조합인 '스타벅스 노동자 연합'은 자신들의 공식 SNS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스타벅스는 '이런 내용에 스타벅스 로고를 사용하지 말라'며 노조를 상표권 침해 혐의로 고소했다. 친이스라엘 논란이 커지면서 스타벅스는 불매 운동에 시달렸고 실제로 무슬림이 많은 중동과 아시아 등에서 매출이 하락했다.

최근 이 논란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까지 번졌다. 지난달 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허윤진이 스타벅스의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SNS에 공유되자 해외 케이팝 팬들이 허윤진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스타벅스 불매하라(Boycott Starbucks)", "스스로 공부해라(educate yourself)", "#팔레스타인을해방하라(#Freepalestine)" 등의 댓글을 잇달아 달면서 비난에 나섰다. 허윤진 뿐 아니라 스타벅스 컵으로 음료를 마시는 영상을 틱톡에 올렸던 가수 전소미,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셨던 그룹 엔하이픈의 멤버 제이크 역시 해외 팬들에게 같은 지적을 받았다. 이후 전소미는 틱톡 영상을 삭제했고 제이크는 해당 방송 도중 스타벅스 커피에 대한 항의를 받자 "내가 실수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공의 역사

온라인에서 특정한 정치적 대의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행동주의에 나서는 유저들의 행위는 더는 새롭지 않은 일상적 풍경으로 정착했다. 이들은 대화와 공유의 양식을 통해 온라인 상에서 담론을 생산하고, 다수의 사람이 동일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게재하는 '총공'의 형태 또는 해시태그를 이용한 독려를 통해 어젠다를 만들어 내는 등 매우 적극적인 온라인 공론장 관여를 통해 이른바 참여민주주의적(participatory democracy) 양식을 보여준다.

온라인 공론장에서 가장 가시적이고 활발한 행동주의를 보여주는 커뮤니티 중 하나로 케이팝 팬덤을 꼽을 수 있다. 케이팝 팬덤의 인종차별에 대한 온라인 행동주의 사례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에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 해시태그 '납치(hijacking)'가 있다. 2020년 미네소타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면이 공개된 후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블랙라이브스매터(#BlackLivesMatter) 운동이 펼쳐졌다. 이 해시태그에 대한 반동적 테제로 SNS에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라는 해시태그가 올라오자, 케이팝 팬덤은 해당 해시태그에 수많은 케이팝 관련 동영상과 밈을 올려 해시태그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해시태그 '납치(hijacking)'를 감행했다. 대량의 밈(meme)을 업로드함으로써 대상을 무력화하는 방식, 즉 디지털 기술의 효과적인 활용을 통한 정치적 행동주의를 전개한 것이다. 댈러스 경찰이 인종차별 저항 시위 과정의 불법 행위를 촬영한 동영상을 시민이 올릴 수 있는 아이와치달라스(iWatchDallas) 앱을 출시했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앱은 출시되자마자 케이팝 팬들이 올린 소위 팬 캠(fan cam)으로 도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과부하가 일어나 앱 작동이 중지되었다. 이에 댈러스 경찰은 "기술적 문제로 인해" 앱이 일시적으로 다운되었다고 해명했다.

▲BTS, 뉴진스 등이 소속된 하이브의 미국 지사 최고경영자(CEO)인 스쿠터 브라운이 SNS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내용을 올리고 전쟁이 벌어진 이스라엘에 직접 가 군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퍼졌다. 스쿠터 브라운 인스타그램 캡처

가자지구 전쟁과 케이팝 팬덤

현재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곳은 바로 하이브이다. BTS, 뉴진스 등이 소속된 하이브의 미국 지사 최고경영자(CEO)인 스쿠터 브라운이 SNS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내용을 올리고 전쟁이 벌어진 이스라엘에 직접 가 군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퍼졌다.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스쿠터 브라운 퇴출 요구가 터져 나왔다. 지난 2월 23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BTS 팬들(@ARMYforPalestine)은 시오니스트인 스쿠터 브라운과 손을 끊으라며 용산 하이브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였다. 3월 23일에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하이브 아메리카 본사 앞에서 '스쿠터 브라운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청원 사이트인 Change.org에 올라온 '스쿠터 브라운을 하이브에서 퇴출하라'는 전자 청원에는 현재 15만명 가까운 팬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스쿠터 브라운의 퇴출을 요구하는 팬들은 그가 시오니스트이자 엔터 업계의 친이스라엘 단체인 CCFP(Creative Community for Peace)의 일원임을 이유로 든다. 또 팬들은 가자지구의 비인도적 말살에 나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그의 행동이 장차 BTS를 비롯한 하이브 아티스트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난 3월 하이브가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향후 10년간 음반·음원 독점 유통계약을 체결하면서 유니버설과의 북미권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스쿠터 브라운의 관할하에 진행하겠다는 기사가 나자, 하이브의 주가가 급등했다. 팬들은 이것이 자본의 연합을 위해 스쿠터 브라운을 안고 가겠다는 하이브의 의지라며 하이브에 대한 보이콧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런데 현재 팬덤 내에서는 이 같은 행동주의를 둘러싸고 서로 의견이 달라 갈등이 생겨난 모양새다. 최근 출시된 BTS 멤버 제이홉의 새 앨범 보이콧과 멤버 슈가의 콘서트 무비인 <Agust D Tour 'D-Day' The Movie>의 이스라엘 내 상영을 중지하라는 팬덤 내 요구가 거세지자, 국내 팬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고 있다. 정치적 대의를 위해 아티스트의 피땀 어린 창작의 결과물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불만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팬 행동주의는 소비자-팬의 입장에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자신이 의도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략적 행동을 수반해 왔다. 콘텐츠 및 파생상품 보이콧은 소비자 행동주의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어 온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로 BTS 팬덤은 지난 2018년 일본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곡이 BTS 앨범에 수록되는 것을 팬들의 집단 보이콧 캠페인을 통해 무력화했으며, 2022년에는 성범죄 혐의 작곡가의 노래를 BTS 신보에 재수록하는 것을 반대하며 앨범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선별적 대의인가 트랜스내셔널 커뮤니티 속 다양성의 충돌인가

팬 행동주의가 내부에서 컨센서스를 이루며 하나의 대의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때는, 대부분 그것이 '안전한' 대의이거나 팬 대상인 아티스트가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하는 경우다. 지난 2020년 BTS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블랙 라이브스 매터 재단에 백만 달러를 기부했을 때, BTS 팬들이 24시간 만에 백만 달러를 자체 모금해 기부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트럼프 정부의 권위주의적 인종 차별 정책과 폭력적 시위 진압에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지지할 만한' 대의인 데다, 심지어 아티스트가 직접 나서기까지 했던 터라 팬덤의 의사결정과 참여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그러나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개인들로 이루어진 트랜스내셔널 팬덤이 한 이슈에 완전히 같은 의견을 갖기란 대체로 어려우며,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각자가 속한 국가 정체성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며 우크라이나 지지를 표명할 때의 러시아 팬, 원폭 티셔츠 논란에서 출발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한목소리로 비판할 때의 일본 팬, 대만 출신 걸 그룹 멤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뒤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해 사과 동영상을 찍도록 만들었던 기획사를 비판할 때의 중국 팬처럼, 팬 커뮤니티가 어떤 종류의 대의를 지지할 때마다 뒤로 밀리는 국가의 팬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덤은 끊임없이 특정한 대의의 컨센서스를 만들기 위해 내부에서 협상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며 때로는 논쟁하고 반목한다. 인종, 종교, 젠더 등 다양성의 전시장과도 같은 트랜스내셔널 팬덤에서,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며 민감해질 가능성을 품은 그 어떤 사안에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다양성 시대의 해법은 아님을 알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트랜스내셔널 팬덤을 동질적인 집단 논리로 포획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실행하는 정치적 행동주의의 바탕에 팬덤이라는 공간에 대한 공유된 의식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중음악 팬덤은 아티스트와 음악에 대한 애정의 공유를 통해 팬들이 서로를 동료로 인정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중에서도 케이팝 팬덤은 정치적 가시성이 약하고 과소 평가된 유색인종과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커뮤니티이다. 그들에게 있어 케이팝 팬덤은 기존의 문화적 지배 질서를 벗어나 같은 것을 즐기는 동료를 만나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이자, 주변화된 정체성들이 모여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나타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자 전쟁을 둘러싼 팬 행동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과연 케이팝 팬덤이 내부의 갈등과 반목을 어떻게 협상하며 타개해 나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junelee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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