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함정 수출 경쟁력 키워야 K-방산 수출4강 신화도 가능하다[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우리는 구미에 비해 반세기 이상 늦은 후발주자, 지금이 시작
세계 함정시장 규모 연평균 2.70% 성장 2030년 444억 달러
대기업간 이전투구식 경쟁보다 기술경쟁 하되 수출 위해 협업해야
지난 4일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열린 신채호함 해군 인도식에는 해외 9개국 20여 명의 정부와 군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최신예 3000t급 국산 중(重)잠수함 신채호함의 적기 인도식을 함정 수출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함정 분야에서는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마이클 맥도날드 캐나다 연방상원의원과 마이클 제이콥슨 호주 잠수함사령부 국장, 파울 두클로스 주한페루대사를 비롯해 미국, 필리핀, 폴란드, 콜롬비아, 에콰도르, 영국 등 총 9개국 20여명의 정부 인사들이 참석, 높아진 국산 잠수함의 대외 위상과 신규 잠수함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국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참가 외국 인사 중 파울 두클로스 주한페루대사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지난주 HD현대중공업이 페루 국영 시마(SIMA) 조선소 해군 함정 건조 프로젝트의 전략적 파트너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라며 "페루 해군이 역내 함정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도록 최첨단 선박 건조 등 많은 도움을 주길 기대한다"며 한국과의 기술 교류에 기대감을 나타났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987년 뉴질랜드에 8400t급 군수지원함을 인도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에는 필리핀으로부터 수출용으로 개발한 2200t급 원해경비함 6척을 수주하는 등 현재까지 총 18척의 해외 함정을 수주했다. 국내 함정산업의 수출 경쟁력은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어 K-방산 수출 4강 신화 달성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
◆페루 시마조선소 HD현대중공업 현지 공동생산
파울 두클로스 주한페루대사가 한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언급한 것은 HD현대중공업과 페루 시마 조선소가 3400t급 호위함 1척, 2200t급 원해경비함 1척, 1500t급 상륙함 2척 등 총 4억 6290만 달러 규모의 함정 4척에 대한 현지 건조 공동생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은 시마조선소와 협력해 오는 2029년까지 이들 함정을 순차적으로 페루 해군에 인도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이 함정의 설계, 기자재 공급 및 기술 지원을 수행하고, 시마조선소가 최종 건조를 맡게 된다. 오는 4월 예정된 본계약이 체결되면 HD현대중공업은 앞으로 15년간 페루 해군의 전력 증강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협력을 이어 나가게 돼 페루의 차기 함정 후속 사업을 수주할 가능성도 매우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함정수출 낭보가 오랜만에 날아들었지만, 그동안 함정수출은 세계1위 조선기술을 가진 한국조선업에 비해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함정산업은 미국과 유럽에 비해서는 반세기 이상 뒤늦은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K함정 산업 수출 경쟁력 키울 때
그동안 K-함정 산업은 물량이 제한된 국내 함정 사업 수주를 둘러싼 저가입찰경쟁 등 출혈경쟁 여파로 만성 적자에 허덕였고 함정 생태계가 황폐화돼 왔다.
최근 7조8000억원대 한국형 이지스구축함(KDDX) 등 국내 함정사업을 놓고 대기업 간 과도한 경쟁으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K-함정 사업 생태계를 바꾸고 수출 산업으로 키울 전향적 해법이 필요하다. 점점 줄고 있는 국내 함정 물량을 놓고 이전투구식으로 경쟁할 것이 아니라, 기술경쟁은 하되 수출을 위해서는 협업할 분야가 많다.
실제로 HD현대중공업이 필리핀에 수출한 호위함과 초계함에는 한화시스템의 전투체계가 탑재돼 있다. 한화시스템의 전투체계가 최초로 수출되는 기회를 경쟁사가 된 HD현대중공업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내 함정사업은 국내 수주전에 매달릴 게 아니라 앞으로 수출을 위한 기술축적 및 생산기지로서 역할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내 함정산업의 안정적 물량 공급을 통한 경영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방안 등 정부의 함정 사업 정상화를 위한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함정 방산 분야는 계속되는 해양위협과 분쟁이 증대되고 있고 노후 함정 교체와 현대화 소요가 계속 증대하고 있다. 또 기술이 발달하면서 총 수명주기 기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대 소요도 늘고 있다. 여기에 나라별로 조선(함정) 산업 기반을 구축하거나 노후화된 조선소를 현대화하려는 소요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한조선학회 미래위원회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함정시장 규모는 2020년 340억달러로, 연평균 2.70% 성장을 거듭해 2030년에는 44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에서 가장 구매 소요가 많은 호위함은 10년간 연 4.81% 성장률로 누적 1220억 달러가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구축함 경우 2020년 57억 달러에서 2030년 76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누적 규모 710억 달러로 연평균 2.83% 성장률이 예상된다. 경전투함 경우 56억 달러(2020년) → 74억 달러(2030)로, 누적 632억 달러, 연평균 2.77% 성장률이 기대된다. ‘2022~2031 제인스(JANES) 세계방산시장 연감’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10년 간 총 590억 달러로,함형별로는 호위함 32%, 원해경비함(OPV) 21%, 잠수함 17%, 초계함 17%, 군수지원함 6%, 기뢰전함 5%, 상륙함 4% 순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했다.
앞서 국방기술품질원이 발행한 2017년 세계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세계 함정시장 척수는 2017년부터 2026년까지 10년간 수상함 1333척에 약 2363억 달러이며, 잠수함 등 수중함은 155척에 약 1392억 달러로 예측했다.
기관별 함정 소요 예측을 종합해보면, 함형별 소요는 선진국은 전투함을 자국에서 건조한다. 하지만 군수지원함과 지원함 등에 대한 구매 소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며 동남아, 중동, 남미 등은 호위함, 원해경비함(OPV), 잠수함, 다목적함 등의 소요가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함정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주요 글로벌 조선소는 미국의 제너럴다이내믹스, 헌팅턴 인걸스, 영국 BAE 시스템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프랑스 나발그룹,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독일 티센크루프 등의 국가별 대표 방산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 조선소는 매출 기준 글로벌 방산기업 상위 100개 기업 중 13곳이다.
지난 20여 년간 글로벌 방산규모는 명목성장률이 194%에 달하며 실질성장률은 90%로, 2배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함정분야의 매출은 2배 이하로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업체 순위의 큰 변화 없이 견고하게 안정화 현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한국 함정건조 기업은 매출 규모상 세계 방산기업 100권 내 진입하기에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국내 함정 수출 잠수함 3척 포함 40여척…수출 특화 전략은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함정을 수출한 척수는 40여 척 수주(잠수함 3척 포함)에 달한다.종류는 원해경비함(50%), 군수지원함(20%), 호위함·초계함(15%), 잠수함·기타(15%) 등이다. 이 가운데 HD현대중공업은 18척을 수주해 국내 조선업체 중에서는 선도적인 위치에 있고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의 함정 방산경쟁력을 종합해보면 강점으로는 다양한 함형 개발 실적을 보유하고 있고 가격경쟁력과 세계조선 1위의 후광효과와 풍부한 공급망과 방산 생태계가 활성화돼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약점은 함정사업의 낮은 인지도와 국내 인력이 부족해지고 충원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기회요소로는 함정시장의 다양성이 증가되고 K-방산의 후광효과와 정부지원 확대로 볼 수 있다. 위협요소로는 원자재비와 인건비 등이 상승되고 기술개발비와 글로벌 수주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함정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기반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수출수요가 가장 많은 함정의 민·군 공동 프로모션을 추진하는 것이다. 함정 수출 모델로는 원해경비함(OPV), 호위함, 군수지원함, 다목적함, 잠수함 순(順)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함정수출 시장에서는 영국,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그야말로 강호들이 즐비한 상태이다. 이들 강호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체 기술력만으로는 제한이 되고 국내 연구기관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해외수출용으로 특화된 함형을 개발하고 탑재 무장과 장비도 국내개발과 다른 버전으로 개발이 필요하며, 비용도 절감하고 신뢰성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수출 품목을 패키지로 개발하는 것이다. 국내의 풍부한 조선업 인프라를 활용한 ‘한국화된 MRO 특화 단지’를 조성하고 수출함정 맞춤형 교육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해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예비역 퇴직 인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수출 경쟁국과 비교해 유리한 입장이다. 셋째, 정부의 지원방안 확대이다. 함정수출 경쟁국에 대비해서 가장 부족한 분야가 바로 정부와 방산기업 간의 방산정보 교류가 부족하고 이에 따라 데이터 축적이 잘 안되고 있는 점이다. 정부가 구매자인 방산수출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가동되고 있는 팀십(Team Ship) 운영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성도 있다. 이번 HD현대중공업의 페루 함정 건조 수주는 국방부, 방위사업청, 산업통상자원부, 주페루 한국대사관, 코트라(KOTRA) 등 정부 기관과 기업이 ‘팀코리아’가 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쟁쟁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조선 전문가들은 함정 수출에 대한 기술보호 가이드라인를 구체화하고 규제 완화 등 기술이전 범위를 확대하고 산업협력 및 기술지원, 금융지원 등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도적으로는 ‘한국형 FTA’도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만하다.
넷째, 중·장기적 수출경쟁력 기반 조성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 민간기업 합작 투자 등으로 해외 다목적 해양기지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해양물류 거점, 선박과 함정의 현지 정비 등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산 함정의 확장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해외 현지건조 기반 확대, 한국산 함정의 공급망을 세계화하는 것이다. 현재 국산함정의 국산화율은 이미 70%를 넘어선 가운데 호위함급을 기준으로 협력업체는 200여 개, 장비는 160여 종에 달할 정도로 연계산업이 넓다. 한국은 조선업과 함께 함정건조사업이 발전해왔기 때문에 선박 건조와 관련된 연계산업의 공급망이 세계 어느 곳보다 활성화돼 있는 상태이다. 이는 선박 건조에서 있어서 매우 유리한 환경적 조건이며 짧은 기간에 구축되기 어려운 독보적인 경쟁력이다. 국산개발의 표준화된 함정을 많은 나라가 운용할 때 공급망 시장의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현지 함정건조 기반을 갖춘 국가와의 공급망 벨트화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인력난, 원자재 상승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조선 협력업체들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고 한·미 RDP MOU 체결 시 영역은 더욱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사업대표 주원호 부사장은 남미 시장으로 함정수출이 확대되고 있는데 대해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주 대표는 "이번 수주는 남미 함정 시장 개척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풍부한 수출 경험과 앞선 기술력으로 남미 시장에 K-함정 진출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남미 지역은 노후화된 함정이 많아 최신 함정으로의 교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이번 수주가 지역 내 다른 국가로도 수출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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