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부자감세 보수당에 등 돌린 ‘레드 월’ 민심… 정계개편 핵으로 [세계는 지금]

관련이슈 세계는 지금 , 세계뉴스룸

입력 : 2024-04-06 15:40:00 수정 : 2024-04-07 15:22:1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英 총선 ‘태풍의 눈’으로 부상

4년여전 보수당 밀었던 ‘레드 월’
1980년대 노동당 핵심지지 기반 지역
2019년 선거서 보수당 3분의 2 차지
노동당 역사적 참패당하며 정권 내줘

불황·부유층 정책에 민심 이반
레드 월서 노동당 지지율 48%로 상승
보수당은 4년여전 47%서 24%로 급락
16%의 신생 우파 ‘개혁 UK’에도 쫓겨

총선 실시 버티기 들어간 수낵
여론조사서 보수당 압도적 패배 예측
5월 조기총선 주장에 수낵은 “없을 것”
당 일각 우려 목소리… 6월 총선론 대두

민주주의 원류로 꼽히는 영국의 2019년 총선은 정치구도를 뒤흔든 대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보수당과 함께 영국 정치를 양분하던 노동당이 역사적인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선거에서 노동당은 전체 650석 중 203석을 얻어 1935년 154석을 얻은 이후 84년 만에 가장 적은 의석을 점유하는 데 그쳤고, 365석의 압승을 거둔 보수당에 정권을 내줬다.

‘레드 월’이 노동당에 등을 돌린 것이 참패로 이어졌다. 레드 월은 리버풀, 맨체스터 등 도시가 위치한 잉글랜드 북부, 중부 지역으로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와 이 지역 노동자들이 민영화 등으로 격렬하게 대립한 것을 시초로 노동당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이 지역의 노동당 지지세가 워낙 견고해 노동당을 상징하는 붉은 색에 ‘벽’을 합쳐 ‘레드 월’이라는 별칭이 생겨났을 정도다.

 

그러나 2019년 선거에서 레드 월에 해당하는 80여석 중 무려 3분의 2가 보수당으로 넘어가며 선거구도가 완전히 뒤흔들렸다. 핵심 지지 기반을 잃으며 당한 참패에 “노동당이 수권 세력으로 위상을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향후 영국 정계가 보수 우위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불황, 부유층 정책에 다시 돌아선 ‘레드 월’

4년 여가 지난 2024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직전 선거에서 보수당에 47%에 달하는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레드 월 유권자들이 완벽하게 노동당 지지로 다시 돌아섰다. 레드 월 지역 정당 지지도를 지속적으로 추적해 온 영국 리서치기업 R&W 스트레지가 지난 3월 16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 의사를 밝힌 유권자 비중은 무려 48%에 달했다. 반면 보수당 지지율은 24%로 노동당의 절반에 그쳤다.

레드 월에서 보수당은 최근 영국 정치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생 우파정당인 ‘개혁 UK’(16%)에게까지 쫓기게 됐다. 보수당의 지지세 하락과 개혁 UK의 상승세가 워낙 심상치 않아 보수당이 이 지역에서 제3당으로 몰락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영국 정치개혁 싱크탱크인 ‘변화하는 유럽 속 영국’은 “2022년 5월 분석 결과 당시 선거가 치러졌을 경우 노동당이 레드 월에 해당하는 선거구 88곳 중 85곳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예측됐다”면서 “이때 보수당의 지지율이 노동당에 8%포인트 뒤지고 있었다. 지금은 보수당이 20%포인트 이상 뒤지기에 보수당의 전멸이 예측된다”고 밝혔다.

유권자들이 리시 수낵 행정부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 결정적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수낵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50%로, ‘지지한다’라고 답한 비율인 25%보다 무려 25%포인트나 높았다. 취임 다음 달인 2022년 11월 이미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우세해진 뒤 올해 들어서는 지속적으로 20% 이상 높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가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영향이 크다. 영국 통계청(ONS)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영국 경제는 전년 대비 0.3% 하락했다. 2023년 3분기의 0.1% 하락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영국 경제가 기술적 불황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ONS의 경제 데이터 담당 이사인 리즈 매키언은 “영국의 모든 주요 경제부문이 감소했으며, 특히 제조, 건설 및 도매 부문의 성장률이 가장 크게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통적 제조업이 밀집한 레드 월 지역에 직격타로 작용했다.

 

정작 보수당 정부는 야당인 노동당과 차별화를 위해 감세정책 도입에 역량을 쏟고 있다. 지난해 11월 연간 150억파운드(약 25조원) 규모에 달하는 역대 최대 법인세 감면안을 내놨고, 12월에는 상속세 폐지를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표면적으로는 역대급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보수당 주지지층인 부유층을 주 타깃으로 하는 정책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확해 노동자 중심 레드 월 지역은 반발 중이다.

 

R&W 스트레지의 연구책임자인 필립 반 셸팅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브렉시트 이후 이 지역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보여줬던 결속력은 거의 사라졌다”면서 “2019년 보수당이 의석수를 돌파한 것은 그 당시에만 존재했던 특별한 기회였을 것”이라고 비평했다.

◆4년여 만에 정계개편 가시화… 수낵은 ‘버티기’

레드 월이 등을 돌리며 시작된 보수당 몰락의 흐름은 영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될 경우 이번에는 보수당이 다가올 총선에서 역대급 참패를 기록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까지 발표됐다.

영국 더타임스가 여론조사 기관 서베이레이션과 함께 지난달 31일 발표한 전국 1만5000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은 26%에 그쳐 45%인 노동당에 19%포인트 뒤졌다. 레드 월 지역 지지율과 동일한 흐름이다. 의석수 예측에서 보수당은 98석만을 얻을 것으로 예상돼 468석으로 예측된 노동당에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보수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의 예상 의석을 합쳐도 노동당이 286석이나 앞서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노동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것으로 전망됐다.

정치개혁 시민단체인 ‘베스트 포 브리튼’의 나오미 스미스 대표는 “여론조사 결과 이미 다수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등을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큰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평했다. 노동당의 역사적 참패로 대규모 정계개편이 된 지 불과 4년여 만에 또 한번의 정계개편이 가시화됐다.

 

다급한 수낵 정부는 최대한 선거 시기를 미루며 ‘버티기’에 나서고 있다. 이미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5월 조기총선을 압박해 왔다. 5월2일 예정된 지방선거에 맞춰 총선을 함께 실시하자는 것이다. 영국 하원의 임기는 5년으로 다음 총선은 법적으로 내년 1월28일까지 치러져야 한다.

이런 야당의 압박에 수낵 총리는 지난 1월 “올해 하반기에 총선을 치르게 될 것 같고 그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이어 3월 초에도 5월2일 조기 총선 주장에 대해 “그날 총선은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레드 월에서의 하락세를 상쇄할 수 있도록 타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변화하는 유럽 속 영국’은 “보수당이 레드 월을 사실상 포기하고 고학력층이 많이 거주하는 잉글랜드 남부의 ‘블루 월‘을 집중 공략하는 방어적인 선거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평했다. 수낵 정부가 추진하는 지속적인 감세정책도 이 일환으로 사실상 열세를 자인하고 ‘집토끼 잡기’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 속 5월 조기 총선을 위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마감일인 3월26일이 지나며 지방선거와 총선 동시 실시는 최종 무산됐다.

다만, 수낵 총리의 ‘버티기 작전’과 달리 보수당 일각에서조차 조기 총선을 하는 게 유리하다는 목소리도 지속해서 나왔었다. 5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뒤 하반기 총선을 치렀다가는 침체된 분위기에 더 큰 참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5월 총선이 무산된 뒤에도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자 이제 6월 조기 총선론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에는 6월 총선 실시 가능성도 조금씩 커지는 분위기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5월 지방선거 대패는 수낵 총리가 추후 총선에서 당을 이끌 적임자인지 보수당 의원들이 고민하도록 유도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면서 “수낵 총리가 이러한 고민이 확산하기 전 빠르게 선거를 실시해 자신이 선거국면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