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했던 일제강점기의 슬픈 투표장 풍경[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 기자 2024. 4. 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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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의 백년사진 No. 55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넘쳐나는 오늘을 살면서,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한 장씩 살펴봅니다. 독자들의 댓글을 통해 우리 이미지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 고른 사진은 1924년 4월 2일 동아일보 3면에 실린 투표장 사진입니다. 마침 다음 주에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이미 어제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 만큼 시기에 딱 맞는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여 명의 남성들이 투표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모두 뒷모습입니다.

1924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설명에는 “쓸쓸한 학의 선거회장 –어제 수송보교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올해 22대를 맞는 국회의원을 처음 뽑는 1대 국회의원 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치러졌습니다. 1924년 찍힌 이 선거 사진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아닙니다. 무슨 선거인지 설명을 좀 보겠습니다.

세월 없는 학의선거상(學議選擧商)

가가내 인수효가
定數도 못된다고

경성부 학교 평의회원의 선거는 예정과 같이 어제 수송동 공립보통학교에서 거행되여 수송동 골목은 전에 없던 혼잡을 이루었었고 운동장의 주위에는 종로거리의 야시장을 방불케하는 후보자들의 가가(假家)가 즐비(櫛比)하였다. 이 가가도 역시 보통 가가 모양으로 호떡 왜떡 비루 등 상품이 풍부하고 빈약(貧弱)함을 따라 혹은 손님들이 있어서 번창 한곳도 있고 혹은 그렇지 못하여 적적(寂寂)한 곳도 있었는데 이러한 가가의 주인은 물을 것도 없이 시대상도 모르고 그저 ‘점잖은 주의’를 실행하려는 분들이다. 그러나 가가를 내세운 분들이 경성부에서 지정한 수효보다 도로 적은 것을 보아 이 장사도 그다지 ‘횡수(橫數)가 생기는 장사’는 아닌 듯한 반면으로 그대지 머리를 싸고 경쟁할 필요도 없을 듯 싶었다. 그런데 오전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모여든 손님들의 총수는 1천2백 여명에 이르렀다고.

▶ 제일 헷갈리는 내용은, 가가(假家)와 후보자의 관계입니다. 수송동(壽松洞)이면 서울 종로 조계사 부근에 있는 동네 이름입니다. 그곳 학교에 투표장이 설치되어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하러 들어가는 모습니다. 학교 입구에 가가는 내용으로 봐선 천막으로 만든 임시 가게 같은 것을 말하는데 그 안에서는 호떡 왜떡 맥주 등을 준비해 놓았었네요. 간식과 술이 마련되어 있는 천막에는 사람이 붐비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손님이 없어 적적한 풍경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맥주를 ‘삐루’ ‘비루’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100년 전에는 신문에서도 이 표현을 썼었군요. ‘beer’를 그렇게 읽었을테지요.

아무튼, 기사에 따르면 후보자들이 임시 가게를 열어 놓고 투표를 하러 오는 손님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공하는 풍경이 펼쳐졌는데 일제가 할당한 인원수보다 입후보자가 적어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선출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사진 제목이나 기사 내용이 서늘합니다. 선거 참여를 독려하지도 않고 투표율이 낮은 것을 당연하다는 투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가가의 주인은 시대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어떤 이념을 실행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인 게 분명하다. 경성부에서 지정한 후보자 숫자보다 적은 후보자가 출마했으니 머리를 싸매고 경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크게 이번 선거가 인기가 없다” 정도의 뜻으로 읽으면 될 거 같습니다. 그 뒤에 오전 9시부터 2시간 반동안 총 1천 2백 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다는 표현은 그 뒤의 설명이 없이 마무리됩니다. 많다는 것인지 적다는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없습니다. 무슨 선거길래 이런 풍경이 펼쳐졌던 것일까요?

▶ ‘學議’ 선거가 뭔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학교평의회(학의)는 학교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기관 중 하나로 교사와 때때로 학생 대표가 참여하여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평의회 선거는 이러한 평의회의 구성원을 선출하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상황에서의 선거는 제한적이었고, 주로 일본인 관리자나 선출된 일부 조선인 교사들에 의해 지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아, 조선인들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관한 회의체이긴 한데 일본인이나 일본인의 의견을 잘 듣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회의체였었군요. 그래서 선거 참여 열기가 없었던 것이군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검색을 더 해봤습니다. 공주교육대학교 최병택 교수님의 2016년 논문 “1920년대 부 학교 평의회의 구성과 학교비(學校費) 논란 – 경성부 학교 평의회의 사례를 중심으로”을 발견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학교평의회는 부(府)의 경우, 학교부과금 연액 5원 이상을 납부하는 25세 이상 남성을 유권자로 하는 학교평의회원 선거를 통해 구성하게 되어 있었으며, 그 정원은 6인 이상 20인 미만의 범위에서 정해졌다. 선거를 통해 구성된다는 특징이 있어서, 일제는 이를 조선인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내린 용단’이라고 선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권자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데에다가 의결 기능은 전혀 없고 오직 자문 기능만 있기 때문에 민중의 의사를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선인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오늘의 우리 선거 사진으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의 종류에는 4년에 한 번씩 있는 국회의원 선거와 5년마다 있는 대통령 선거 그리고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및 기초의원 등을 뽑는 지방선거일까지 선거가 참 많습니다. 선거 사진의 역사는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 모습 그대로를 반영합니다. 동아일보 내부 데이터베이스에서 ‘선거’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니 7만 6천장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투표하는 리승만 대통령 부부(1950년 5월 31일), 민주당 당사 앞 개표 속보판 앞에 발걸음을 멈춘 시민들(1956년 5월 17일), 시.읍.면장선거에 투표하는 유권자들(고양에서. 1960.12.26.) 朴正熙 共和黨大統領候補는 春川公設운동장에서 遊說. 『野黨의 公約은 사탕발림』이라고 비난했다. <宋鎬昶記者찍어空輸>(1967년 4월 26일), 1일 광주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신민당 유세에서 김대중대통령후보가 연설하고있다. 사진=최금영 기자(1970년 11월 2일), 봄비 속의 우산 행렬.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촉촉이 내리는 봄비 속에 우산을 받쳐들고 기다리고 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제3투표소(1981년 3월 25일). 제12대 총선 날짜를 공고한 중앙선관위는 공명을 위한 벽보 등 각종 홍보물을 전국 각지에 배포, 기권 방지와 공명풍토 조성의 계도에 나섰다(1985년 1월 23일), 民主黨의 金泳三총재가 집회장인 釜山 水營灣광장에 들어서면서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답례하고 있다(1987년 10월 18일).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회원들이 공명선거캠페인 스티커 배포(1991년 3월 13일) 등 정말 다양한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선거는 사진기자들에게는 중요한 취재 영역입니다. 투표 당일 뿐만 아니라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과 선거 운동 그리고 당선자 인사 모습까지 말입니다. 옛날 사진들을 보니 지금과 비슷한 장면들도 있었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풍경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제 나흘 후면 선거 당일입니다. 사진기자들의 현장은 크게 오전과 오후 두 가지로 나뉩니다. 오전에는 선거 행렬과 특이한 유권자 모습을 찾아다닙니다. 배를 타고 투표하러 가야 하는 지역 유권자들, 청학골처럼 옛날 도포를 입고 있는 분들이 모여 있는 곳, 최근에 늘어난 특이한 사람들 가령 들면 러시아에서 영구귀국한 동포 후손들이 조국에 와서 첫 투표를 하는 장면, 군인들이 배 위에서 투표를 하는 곳 등을 예전에는 취재했었습니다. 올해는 그런 곳은 많지 않을 겁니다.

사진기자들이 제일 우선적으로 찾는 곳은 ‘장사진’을 이루는 투표소입니다. 긴 뱀처럼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는 곳 말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을 잘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스크랩을 참고하거나, 최근 인구가 늘었지만 투표장은 많지 않아 병목현상을 보일 곳 같은 곳을 찾아갑니다. 불불복처럼 보이지만 꽤 꼼꼼하게 체크해서 갑니다. 사전선거가 활성화되면서 이런 곳을 찾는 곳은 점점 힘들어지긴 합니다. (혹시나 주변에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곳을 알고 계신다면 적극적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저녁에는 선관위나 여야 당사 개표 상황실 취재를 하거나 격전지역에서 승리한 후보자들의 캠프로 가서 꽃다발 세리머니를 기다립니다. 올해는 비례대표 용지가 너무 길어 신형 투표지 분류기도 무용지물이 되고 100% 손으로 개표를 한다고 하죠? 사진기자 중에 몇몇은 밤을 새워 개표장과 당사 표정을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어떤 모습이 가장 상징적일까요? 정치 혐오가 팽배한 만큼 썰렁한 투표장 모습일까요? 아니면 첨예하게 대립한 상대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민심이 들끓을까요? 세월이 지나 오늘의 선거는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지 궁금합니다. 이번 주에는 100년 전 서울에서 치러진 선거 풍경을 담은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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