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적’ 행보

김양진 기자 2024. 4. 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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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 주요 국면마다 민심에 역행하는 행보… 윤 대통령의 총선 활약상 총정리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4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담화문 읽기’는 지난 6개월 총선 준비기간 보여준 ‘윤석열 스타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실제공
4·10 총선의 주요 국면에 윤석열 대통령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단순 등장에 그치지 않았다. 직접 판을 깔았고, 온몸을 던져 참전했다. 반복적인 행동 패턴도 확인된다. ‘일단 던진다. 여론이 안 좋다. 어정쩡하게 수습한다. 뒷감당이 안 된다.’ 기후위기 대응, 헌법 개정 같은 절박한 의제는 사라졌다. ‘윤석열 찬성이냐, 반대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겨레21>이 2023년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참패 이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이번 총선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2천 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 정부가 꼼꼼히 계산해서 산출한 최소한이다.”

2024년 4월1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날 그의 ‘담화문 읽기’는 지난 6개월 총선 준비 기간 보여준 ‘윤석열 스타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로 이어진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추진’ 논란은 2월6일 대통령실의 갑작스러운 발표로 불이 붙었다. 발표 초반 증원에 찬성하던 압도적인 여론도 의료 공백 현실화가 이어지자 정부 대응을 못 미더워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한국갤럽 3월 둘째 주 여론조사(1002명 대상) 결과를 보면, 정부의 의료 공백 대응에 대해 ‘잘 못하고 있다’는 의견은 49%, ‘잘하고 있다’는 38%에 그쳤다. ‘이번 일로 내가 아플 때 진료받지 못할까봐 걱정된다’는 의견도 69%에 달했다. 국민의힘 수도권 후보들도 부랴부랴 “현재 2천 명 증원 방안 재검토”라는 중재안을 제시(3월26일)했다.

윤 대통령이 수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 선 대통령 말은 뜻밖이었다.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 ‘국민 위협’ 등 강경한 어휘가 넘쳐났다. “이해집단의 저항에 굴복하면 정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기자 출입을 막은 채 이뤄진 51분간의 일방 발표가 끝났다. 대혼란이 벌어졌다. 같은 날 오후 참모들이 기자들을 찾았다. “(대통령은 정부안이)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후 7시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방송에 나와 “2천 명이라는 숫자가 절대적 수치라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에 출입하는 한 방송기자는 “대통령이 외국어로 말한 것도 아닌데 참모들의 통역을 들어야 진의를 알 수 있다는 게 지금 대통령실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국민은) 의사 수를 늘리는 데는 동의하지만, 꼭 이런 식으로 풀어야 하느냐는 대통령의 리더십·정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그간 내 얘기가 맞았다’고 하는 식이에요. 대통령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진 국민의힘 후보들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일이죠.”

“낡은 그린벨트 규제, 산업 발전을 위해 대폭 해제하겠다.”

2024년 2월21일 울산에서 열린 13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의 총선용 비장의 카드는 따로 있었다. 1월5일 경기 용인을 시작으로 3월26일 충북 청주까지 24회에 걸쳐 전국을 돌며 개발사업 등 민원 해결 선물 보따리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행사가 이뤄졌다. ‘관권선거’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전례 없는 행사였다. 지역 안배도 고려되지 않았다. 행사가 열린 지역을 보면 △서울(여의도·영등포·동대문·성동) △경기(용인 2회·고양·수원·의정부·판교·성남·하남·광명) △영남(부산·울산·창원·대구) △호남(전남) △충청(대전·충남·충북) △인천 △강원(춘천·원주) 등으로 국민의힘이 총선 승부처로 삼은 곳과 상당 부분 겹쳤다. ‘토론회’로 포장됐지만 임현택 당시 대한소아청소년과 회장이 경호처 직원들에 의해 입을 틀어막힌 채 끌려오는 일(3월21일)도 발생했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가 말했다. “대통령 개인이 ‘여당을 지지해달라’고 정무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국외 사례 등으로 볼 때 앞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번 민생토론회라는 방식은 대통령의 공적 권한을 이용한 정치 개입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합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집권 2년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인데도, 내놓을 만한 국정 성과가 없는 상황이니 급했던 걸로 보입니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총선에 반영될 것’이라는 생각에 차분하게 준비해야 할 문제를 선거 전에 풀어보려고 조급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4월1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이 ‘지난 27년간 어떤 정부도 단 한 명의 증원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에 ‘(의대 정원 증원을) 우리 정부의 국정 성과로 받아들려달라는 속내를 드러낸 거죠.”

민생토론회에서 나온 정책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재원확보 대책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20년 여야 합의로 2025년 도입이 확정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폐지 방침(1월17일)을 밝히기도 했다. ‘이권 카르텔’이라며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의 전년 대비 14.7% 삭감을 주도해놓곤 “내년(2025년)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겠다”(1월15일)고 말한 것도 앞뒤가 안 맞는다. 그린벨트 해제(2월21일)·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2월26일) 등 대규모 막개발 추진 역시 발표 이전에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의 지적이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같은 문제는 최소한 연구용역이 2∼3건 이뤄지고, 전문가들을 불러 공청회를 하고, 유관단체 의견을 수렴해 세법개정안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다뤄져야 합니다. 세수 관련이니 정부 수입과 관련돼 있고 국채 발생, 지출 등이 연동돼 있어요. 거쳐야 하는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다 어기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거죠. 각종 부담금 폐지 문제도 3년마다 전문가 평가를 통해 폐지나 통·폐합, 요율 조정을 결정하도록 한 규정에 따라야 해요. 그런데 ‘대통령이 말했으니 일단 폐지하고 보자’는 식이죠. 지난해까지는 독립·예술영화 지원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던 영화부담금을 갑자기 폐지한다고 합니다. 독립·예술영화 지원이 필요 없어진 것인지, 부담금을 없애고 증세하겠다는 건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어요. 이런 것들은 실행이 어렵다고 봐야죠. 민생토론회에서 나온 말의 상당수가 관련 부처나 기획재정부와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어요.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는 이어서 말했다. “정책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죠. 돈이 수십억부터 수조 원까지 걸린 사안을 결정하는데, 이걸 누구 하나 감옥에 보내고 안 보내는 식으로 결정할 순 없는 거거든요.”

윤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하고 호주로 출국하도록 한 일은 팽팽했던 여야 대결구도를 깨뜨린 결정적 계기였다. 이 전 장관이 호주 브리즈번으로 출국한 2024년 3월1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해병대 전우회 소속 예비역들이 이 전 장관의 출국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영부인에 대해 씨나 여사도 안 붙이는 건 진행자가 잡아줘야 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빨간 운동화를 선물받은 일은) 유권자들이 관심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얘기다.”

3월22일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회의에서 ‘TV조선 추천’ 손형기 위원이 한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가장 기민한 관심을 둔 분야 중 하나가 언론통제다. 2023년 12월1일 위원 5명 합의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를 기형적인 2인 체제로 운영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사퇴한 것은 노련한 정무적 판단과 법기술이 결합된 결정체였다. 당시 제출됐던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되면 몇 달간 방통위는 헌법재판소 심리 기간인 최장 6개월 동안 멈춰 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자신 사퇴라는 ‘기술’과 대통령의 검사 선배인 김홍일 위원장을 즉각 임명하는 ‘오기’로 맞섰다. 그 결과가 방통위에 의해 와이티엔(YTN)을 유진그룹 쪽에 팔아넘긴(2월7일 방통위의 최다액출자자 자격 승인) 일이다. 그러자 이명박 시절 YTN 대량 해직 사태를 주도했던 김백씨가 새 사장이 됐다.(3월29일) 김백 사장은 단체협약 사항인 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보도국장 교체를 강행(4월2일)했다. YTN 간판 프로 ‘돌발영상’이 불방(4월3일)됐다.

같은 해 12월11일 출범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거방심위) 상황도 심각하다. 지난 15년간 2건밖에 없던 최고 수준 징계인 ‘관계자 징계’가 이미 9건 나왔다. 대부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틀어막는 내용이었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YMCA 같은 단체의 추천을 받아야 할 위원 자리를 공정언론국민연대 같은 극우단체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어요. 선거방심위가 생각이 경도된 사람들끼리 모인 극우들의 놀이터처럼 된 거죠. 선거방송 공정성 확보를 위한 곳이 여당 선거운동을 해주는 곳이 됐습니다. 근데 이런 선거운동이 정말 여당 지지율에 도움이 될까요?”

“민심을 읽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고집스럽게 역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일으킨 이(종섭) 대사 문제에 대해 아무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3월30일치 ‘이종섭 결국 사퇴,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 불가’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갖은 애를 써도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갤럽의 2023년 10월 둘째 주∼2024년 3월 넷째 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54∼63%로 나타났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공천 배제’, ‘서울 강북을 민주당 후보 두 차례 낙마’ 등등 민주당 공천 파동도 물의를 일으켰지만, 윤 대통령의 잇따른 무리수가 이를 상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2024년 3월4일)하고 호주로 출국(3월10일)하도록 한 일은 팽팽했던 여야 대결구도를 깨뜨린 결정적 계기였다.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외압 의혹을 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인 피의자다. 출국금지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여권·보수언론에서조차 ‘도피성 대사 임명이다. 귀국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제대로 조사 안 한 공수처가 문제다. 임명 철회 계획은 없다”(3월14일 장호진 안보실장)고 맞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공수처·민주당 내통설’이라는 근거 없는 음모론까지 주장(3월12일)했다. 번지수 틀린 대응에 여론이 들끓었다. 이 전 장관은 사상 첫 ‘방산 공관장 오프라인 회의’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귀국(3월21일)했다. 하지만 언론 노출을 피하는 어정쩡한 모양새를 보였고,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결국 대사 임명 25일 만인 3월29일 이 전 장관은 대사직에서 물러났다.

“이 전 장관이 해병대수사단에 채 상병 사건 이첩을 보류하도록 지시(2023년 7월31일)한 일은 ‘권리행사 방해’로, 경북경찰청에서 사건을 회수(8월2일)하도록 한 것은 ‘의무에 없는 일을 시킨 것’으로 명백한 직권남용죄로 보입니다. 문제는 누가 지시했느냐입니다. 이 전 장관이 전날 결재한 ‘이첩 지시’를 하루 만에 ‘대통령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번복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이 전 장관이 수사 과정에서 어떤 진술을 하는지에 대통령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수사 방해라는 비판이 예상됨에도, 또 ‘범인도피죄’로 보일 수 있음에도 대사 임명 강행에 나선 것 같아요. 만에 하나 ‘대통령이 시켜서 했다’는 진술이 나오면 100%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수 있거든요.”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분석이다.

김종대 전 의원(녹색정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종섭 대사 임명’이나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회칼 발언’(3월14일), ‘대파값 875원 합리적 발언’(3월18일) 등등은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국민들에게 ‘맞아, 윤 대통령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라는 생각을 일깨워준 효과가 컸던 것 같아요. 서둘러 반성하고 수습하기보다는 버티고 고집부렸던 윤 대통령의 모습들을 소환시킨 거죠. 한국방송 (KBS) 신년 대담에서 ‘박절하게 대할 수 없었다’며 인정에 호소하면서 누그러졌던 김건희씨 논란을 가리던 장막도 벗겨진 거죠. 그 격발 신호가 바로 ‘이종섭 도피성 인사’였다고 봅니다.”

윤 대통령이 3월10일 경기 고양시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두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서울 강서구청장 하나 갖고 정권 심판론이라고 하는 그런 오버가 어디 있느냐.”(2023년 10월12일 대통령실 한 관계자가 <한겨레>에 한 말)

윤석열 대통령실의 현실 부정에 가까운 상황 판단·대응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2023년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17.15%포인트 차 여권 대패가 그 결과였다. 당시 선거 대진표는 윤 대통령이 짰다. 징역형 확정으로 출마 자격을 잃은 김태우 후보(국민의힘)를 광복절 특별사면의 방식으로 우격다짐 당 간판으로 내세웠다.

매서운 민심에 대한 윤 대통령의 해법은 거꾸로 ‘친정’ 체제 강화였다. 최측근 검사 후배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행(2023년 12월21일)시켰다.

같은 해 11월27일 <서울의소리> 등에서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수백만원짜리 명품백을 수수하는 생생한 영상이 공개됐다. 김 여사 사과 요구가 빗발쳤지만 국민의힘에선 되레 “몰카 공작의 피해자(김건희)에게 사과하라 하냐”(‘친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며 역공을 퍼부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통과(같은 해 12월28일)됐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는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까지 소환됐다. “총선 후 특검”이라는 중재안까지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격노’했고,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을 ‘무조건 악법’으로 규정하며 거부권을 행사(2024년 1월5일)했다.

여당을 대통령 부하 조직쯤으로 보는 윤 대통령의 비민주적 인식은 노골적인 당무 개입을 통해 확인됐다. 한 위원장이 김건희 여사를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공천(2024년 1월17일)한 것이 역린을 건드렸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을 직접 만나 사퇴를 종용했다. 이 갈등 분출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유지-김경율 불출마 선언’으로 서로 한발씩 물러나며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총선은 윤 대통령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꽂았고, (국민의힘) 공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했고, 윤 대통령 색깔로 치러지는 총선”이라며 “(김 여사가 2023년 12월15일부터 수개월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대통령 부부의 존재감을 감추려고 하자, 역으로 ‘윤석열 존재감’은 도드라졌다. 기후위기 대응 등 절박한 의제들은 부각되지 못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반윤’ ‘친윤’을 묻는 ‘윤석열 총선’으로만 총선 의제가 단순화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이렇게 분석했다.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은 어려운 선거 국면마다 장애물만 만들어준 역할을 한 게 아닐까 합니다. 보수언론에선 ‘결단하라’는 말까지 나오고, 당 내부에서도 ‘탈당’이 거론되잖아요. 소수의 검사들 사회에선 윤석열 식의 ‘위로 들이받는 리더십’이 통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정치 영역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선 싫어도 활용하고 멀리하고 싶어도 가까이해야 할 게 있어요. 그런데 4월1일 담화 때도 그렇고 계속 들이받는 거죠.”

“쓰레기 같은, 이재명 대표와 김준혁 후보 등이 말한 쓰레기 같은 말을 들어봐달라.”

3월30일 경기 부천 지원유세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3월28일 서울 신촌 유세에서도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등 극단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4월2일 충남지역 지원유세에선 “부족한 게 있으면 제 책임이니 저에게 돌리면 된다”며 읍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위원장이 ‘막말’ ‘읍소’ 유세에 나선 까닭은 국민의힘 총선 열세가 짙어지자 조급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렇게 지적했다. “여권 열세의 원인을 제공한 윤 대통령이 좀더 진지하고 진솔하게 국정운영 방향을 평가하고 반성해야죠. 막말·읍소는 국민 기대에 한참 못 미칩니다. 그걸로 문제가 해결될 순 없죠.”

“요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들이 자기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 같아요. 마치 그리스 신화의 우로보로스(자기 꼬리를 먹는 뱀 형상의 괴수) 꼴 같아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자신이 공격하는 게 내 몸인지 남의 몸인지 구분 못하는, 전략의 중심이 해체·파괴된 상태 같아요.”(김종대 전 의원)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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