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볕과 바람에 뽀송뽀송 보들보들
다섯 줄이나 되는 빨랫줄에 빨래가 빼곡하다. 마치 오선지에 그린 음표처럼 길고 짧고 크고 작은 빨래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며 합창한다. 많은 식구의 빨래에 고단한 엄마는 아기를 팔베개해주다 잠이 들었는지 개미 기어가는 소리라도 들릴 것처럼 집안이 조용하다. 아이들은 진즉에 살금살금 뒤꿈치 들고 엄마의 시야 밖으로 재빨리 내뺐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빨랫줄을 길게 매달 마당도 없으려니와 하물며 빨랫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를 보기는 더욱 어렵다. 종이 기저귀를 써서 그렇지만 아예 갓난아기가 귀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돌이켜 생각하니 날마다 마당에서 걸리적거려서 귀찮기만 했던 기저귀가 희망의 노래였던 셈이다. 마당에서 숨바꼭질하며 뛰어놀 때마다 “야야, 빨래 때 묻는다” 하고 어머니가 야단치시는 바람에 철딱서니 없는 우리는 치렁치렁 늘어진 기저귀가 그저 싫기만 했다.
볕 좋은 날이면 빨랫감을 챙기시며 “이 좋은 볕을 그냥 놀리면 너무 아깝지.” 혼잣말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공짜로 쏟아지는 햇볕도, 제풀에 불어오는 바람도 덧없이 흘려보내면 아깝다고 생각하시던 살뜰한 어머니는 종일 좋은 볕을 머금고 바람에 흔들리며 빨래가 개운하게 마르면 차례로 걷어 정성스레 손질하시곤 했다. 반듯하게 착착 접어 개키면 얼마나 정갈하고 보기 좋은지, 무엇이든 어머니의 손이 가면 최고였다.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햇볕과 바람을 입고 컸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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