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참다운 이야기
억지로 꾸미거나 부풀리지 않아
루시아 벌린 ‘여기는 토요일’(‘청소부 매뉴얼’에 수록, 공진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여기는 토요일’의 ‘나’는 1년 미만의 징역형을 사는 죄수들이 수감된 ‘카운티 교도소’에서 CD를 처음 만났다. 그때 CD는 스물두 살이었고 그보다 열두 살 더 많은 나는 운동 시간에도 대개 혼자 가만히 서 있는 그에게 책들을 소개해 주었다.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된 CD를 4년 후 다시 교도소에서 만나게 됐을 때 그는 이제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교도소에는 음악, 도예, 연극, 그림 반 외에 베빈스 선생님이 맡은 글쓰기 반이 있어서 선생님은 재소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아픔’ 같은 작문의 주제를 내주곤 글쓰기를 하게 한다. 글쓰기는 그들 사이의 관계와 우정을 바꾸어 놓았으며, 그들은 매일 밤 서로의 이야기를 읽었다.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렇게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글쓰기 시간에 CD가 자신이 쓴 글을 읽게 되었다. 한 청년과 소녀가 어느 고물상 진열창을 들여다보며 그 안의 사연이 깃든 물건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작은 아기 신발과 오래된 사진들. 그가 낭독을 마치자 글에서 아픔을 느낀 누군가는 울고 모두 침묵했다. 베빈스 선생님은 선생이란 이런 걸 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분이었다. “단순히 지능이나 재능이 아니라 고귀한 영혼 같은 것,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자질”을. 선생님은 그들에게 강조했다. “자신은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좋은 글을 쓰는 CD는 선생님의 조언처럼 학교에 갈 수도, 장학금을 받을 수도,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기 형에 대해 글을 썼다.
소설의 결말 부는 작가의 의도를 마지막으로 슬그머니 내려놓는 자리이기도 한데 루시아 벌린의 단편을 읽을 때는 특히 마지막 문장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루시아 벌린은 최선의 결말을 위해서 때로 최악의 상황을 만듦으로써 삶은, 인간은 대체 무엇이지? 하는 질문을 툭 남겨놓곤 하니까.
‘여기는 토요일’에는 베빈스 선생님과 작가의 모습이 많은 부분 겹쳐, 동일시해서 읽게 된다. 청소부, 글쓰기 교사, 전화 교환수, 사무원 등의 일을 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밤마다 글을 썼던 루시아 벌린. 그녀는 말했다. 이야기는 참다워야 한다고. 억지로 꾸미고 부풀리지 않으며 불필요하게 기발하게 만들지도 않은. 일상의 작은 이야기에 위트와 애수, 진실함과 경탄을 부여할 줄 아는 작가가 루시아 벌린이다. 그 때문인지 ‘청소부 매뉴얼’에 수록된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훌륭한 글쓰기 반 선생님을 만난 듯 나만의 참다운 이야기에 대해 떠올리게 되고, 어쩌면 쓰고 싶어지게 될지 모른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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