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71. 계속 쓰는 나만의 그림일기
저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보조기억장치
17년째 그림일기 작성 1만여장 지면으로 기록
스케치북·이면지·손녀 기저귀까지 뜯어 활용
캔버스 작업 전 밑그림 그리며 드로잉 공부 가능

이렇게 될 줄 솔직히 상상하지 못했다.
그간 그리고 쓴 나의 그림일기가 춘천문화원의 춘천학연구소에서 스캔 및 촬영 작업이 진행 중이다. 어느덧 3개월째이다. 보잘것없는 수준의 그림일기가 디지털화 되어 보존된다니. 이 얼마나 기쁘고 보람된 일인가.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 있는 자료를 기록하는 일’이 ‘아카이브’의 사전적 개념이니까 내 그림일기가 그만큼의 미시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 아닌가. 훗날 눈을 감을 때 이중섭 화백처럼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은혜 입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아주 조금은 화가로서 밥값을 한 느낌이다.
그게 그러니까 2007년 3월 26일이었다. 십년 넘게 그냥 보통 글로써만 일기를 써 오다가 그날 갑자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명색이 그림을 그리며 사는 화가가 마땅히 그림일기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바로 뒷날부터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햇수로 17년이니까 대략 6200여 장의 그림. 그림이 크거나 쓸 내용이 많아지면 덧보탠 지면이 늘어나 아마 만여장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 소개하는 그림일기는 당연히 그 이후, 즉 올해 2월 13일의 것이다.
그려진 그림은 이집트 왕조 시대 이전의 테라코타로서 ‘두 팔을 들어 올린 여성 소 입상들’이라 적혀 있다. 일기에 그려지는 그림들은 별의별 것이 다 포함된다. 캔버스에 옮기기 전의 밑그림을 비롯해 이 그림처럼 이전 인류가 남긴 유물들도 많다. 드로잉으로서 공부도 되거니와 훗날 내 창작에 이래저래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 외 콜라주도 많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주운 광고지까지 포함된다. 이 광고지들 역시 춘천이라는 도시에서 생산된 작은 역사의 한 증거물이라고 판단해서이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소소한 자료들이 쌓여 한 지역의 역사가 제대로 써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예 그림일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종이도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스케치북은 물론 손에 잡히는 대로 썼다. 각기 다른 종이의 특성을 체험하려고 도록의 이면지도 활용했다. 양질의 종이는 값도 비쌀뿐더러 그 많은 종이를 어떻게 다 감당하겠는가. 실험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상품 포장지는 물론 심지어 손녀의 기저귀까지 뜯어 사용하기도 했다.
일기의 시작은 이렇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행복이나 불행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에세이라 부르는 문학 장르를 만든 장본인 몽테뉴가 남긴 말. 이 말은 ‘잘 나갈 때’보다 요즘처럼 앞이 꽉 막힌 것 같이 갑갑하고 희망보다는 절망, 낙관보다는 비관이 앞설 때 곱씹어야 한다.… 아직도 난 좌절이 뭔지, 낙담이 뭔지도 잘 모르는 위인이 아닐까. 소소한 불만거리와 시시콜콜한 인간관계를 큰 불행과 절망으로 여기며 한숨짓는 건 아닐까. 늘 ‘마음이 팔자’라며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입에 발린 말을 내뱉으면서 정작 실생활에선 작은 일에 실망하고 얼굴 찡그리는 게 아닐까.
왜 아직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지 못했을까. 그의 책을 읽고 싶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가 곧 인간에 대한 연구’라며 쓴 책이라니 삶의 영롱한 사리가 행간에 박혀 있지 않겠는가.
흔히 일기를 쓰는 목적을 ‘저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보조 기억장치’요 ‘최소한의 내적 성찰을 위한 행위’에 둔다. 맞는 말이다. 이 한 장의 짧은 일기에서 나는 몽테뉴를 통해 내면의 거울을 닦지 않는가. 이어서 안 그려지는 그림에 대해 개선의 방책을 뒷부분에서 찾고 있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헤밍웨이의 말을 떠올린다.
“진정한 고귀함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과거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바로 그것.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일기를 쓸 것이다. 그것도 화가로서 그림일기를!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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