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저를 뽑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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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누운 딸아이가 갑자기 내일 반장 선거가 있다고 했다.
평소 학교에서의 일을 집에 와서 고하는 데 영 무심하던 아이가 자다 말고 털어놓은 것을 보면 제 딴에는 중요한 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는데 아이들 22명 중 무려 11명이 출마했단다.
근데 너는 나가서 뭐라고 했어? 아이가 주저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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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는데 공약이 너무 거창한 것 같아. 누구나 학교에서 늘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런 것보다 네가 그냥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게 해보면 어떨까.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골똘히 궁리하는 눈치였으나 더 이상 간섭하면 녀석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 같아 나도 입을 다물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는데 아이들 22명 중 무려 11명이 출마했단다. 그래서 1차 투표로 5명을 뽑고 다시 2차 투표로 반장을 뽑았다는 것이다. 그 치열함도 놀랍지만 반장이 된 아이의 변이 또 압권이었다. 여러분, 헬로키티 아시죠? 키티는 입이 없습니다. 저도 키티처럼 입 없이 제 주장은 하지 않고 언제나 여러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세상에. 가히 명문이 아닌가.
딸아이는 저도 감동해서 그 애를 찍었다고 했다. 뭐? 너를 찍은 게 아니고? 아이가 눈을 흘겼다. 엄마는 참. 내가 어떻게 나를 찍어?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너 스스로 반장이 되겠다고 나갔으면 너를 찍어야지. 대통령도 선거하면 자기를 찍어.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5명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 녀석을 위로하려다 말고 나는 물었다. 근데 너는 나가서 뭐라고 했어? 아이가 주저하며 대답했다. 저는 흰머리입니다. 뽑아주세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애들이 웃었어?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안 웃었고 심지어 선생님은 그게 끝이냐고 하셨단다. 맙소사. 친구들이 웃기라도 했으면 민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최소한 나를 웃겼다, 아주 오래 실컷.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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