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국 일본에 남은 반전 사상가[책과 삶]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
쓰루미 슌스케 지음 | 김성민 옮김
글항아리 | 304쪽 | 1만7000원
일본의 사상가 쓰루미 슌스케는 1922년 도쿄의 정치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미국으로 가 16세 때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을 침공하자 미국 정부 관료는 쓰루미에게 “일본으로 돌아가는 교환선에 타겠느냐”고 물었다. 쓰루미는 “타겠다”고 대답했다. 1942년 귀국한 쓰루미는 바타비아(현재 자카르타)의 해군 무관부에서 간부들이 읽는 신문을 만들었다.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에는 쓰루미가 80세부터 7년 동안 청년 시절을 회고하며 쓴 에세이가 담겼다. 쓰루미의 일본 귀국 결정은 삶에 있어서도, 사상에 있어서도 짙은 영향을 남겼다. 쓰루미는 “나는 그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질 것을 알고 있었다”며 “다만 질 때는 지는 쪽에 서야 할 것 같았다”고 주장한다. “가족, 친구, 그것이 내게는 국가와 구별되는 ‘나라’이며, (중략) 이 국가는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반드시 패배한다, 이 국가의 패배는 ‘나라’를 짓밟을 것이다, 그때 나의 ‘나라’와 함께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쓰루미는 미국에서 유학해 미국 자유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쓰루미는 “법률적인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떻게 그 국가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국가 권력이 말하는 대로 타인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라고 썼다. 하지만 쓰루미는 직접 총을 쏘지는 않았더라도 일본 군속(군무원)으로나마 전쟁에 기여했다. ‘나라’와 함께한다며 ‘국가’의 죄를 저지른 모순에 대한 변명은 다소 궁색해 보인다.
쓰루미는 패전 이후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소리 없는 소리의 모임’에서 안보조약 개정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며 ‘베트남의 평화를! 시민연합(베헤련)’을 조직했다. 전쟁 포기를 약속한 일본 헌법 9조를 지키려는 ‘9조 모임’을 주도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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