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나는 세월호를 몰랐다
‘조각난 마음 이어 붙이던’ 10년
유족들 퀼트·목공조합·가족극단
시신 닦은 상장례사·성직자들…
거대한 슬픔과 단단한 기쁨 담은
책 ‘520번의 금요일’을 권한다
<520번의 금요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그간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책을 펼치고 몇쪽 읽지 않았는데도 수문이 열리듯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나 몰래 내 안에서 10년의 세월을 울고 있던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가만히 앉아서 문장을 눈으로 더듬어갈 뿐인데도 험한 고개를 넘는 듯 몇번이나 쉬어가야 했다.
우리가 어떻게 세월호를 모를 수 있겠는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가라앉던 세월호를 말이다. 또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분향소 정면을 가득 채운 앳된 얼굴들,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정을 껴안은 채 청와대를 향해 걷던 유족들의 모습, 진도 팽목항에서 나부끼던 노란 천들, 사람들의 옷과 가방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들. 그뿐이 아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던 대통령, 비쩍 말라가던 유족들을 조롱하며 배달음식을 시켜먹던 사람들, 환청처럼 들렸던 ‘가만히 있으라’는 말까지. 우리가 어떻게 세월호를 잊겠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몇개의 파편에 지나지 않았음을. 나는 유족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유가족 대책위’, ‘피해자 가족협의회’ 같은 이름뿐이었다. 참사 직후 ‘유가족 대책위’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이름이 어떻게 해서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 더 나아가 생존 화물기사까지 아우르는 ‘피해자 가족협의회’가 되었는지,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몰랐다. 죽은 아이의 엄마 곁에 생존 아이의 엄마가 죄지은 사람처럼 쭈뼛쭈뼛 앉는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유족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날 선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하는 법을 연습하고, 웃는 법을 새로 익혔”던 시간에 대해서, 죽은 아이들을 품은 채로 명절에 떡이랑 음식을 돌리며 웃어야 했던 유족들의 그 기막힌 날들에 대해서 몰랐다.
나는 몰랐다. 부모들이 행여 ‘떠난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까 뒤로 숨고, 주변의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가린 채 걸어야 했던 형제자매들에 대해서. 나는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우리는 이제 숨죽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섰는지 몰랐다. 나는 생존 학생들에 대해서도 몰랐다. 의료진의 만류에 따라 친구들의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던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야 했는지 몰랐다. 학교에서 무슨 죄라도 지은 양 밥도 먹지 못하고, “쉬는 시간, 떠난 친구의 자리에 가서 편지를 쓰고 오거나 울고 오는 이들”에 대해서, 또 떠난 친구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행진에 나섰던 학생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몰랐다. 유족들의 초대를 받아 강연했던 날, 내가 받은 팔찌와 배지, 무엇보다 예쁘게 꽃을 수놓고 이름까지 넣어준 손수건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엄마들이 “자신의 조각난 마음을 이어 붙이던” 퀼트 공방에 대해서도 몰랐고, 관객석에 마음속 아이를 앉혀놓고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고 랩을 구사했던 ‘가족극단’에 대해서도 몰랐다. ‘죽은 나무’를 붙들고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골몰했던” 목공조합에 대해서도, “겨울에 연탄을 나누고 모자를 떠서 할머니들과 나누”던 유족들의 봉사단에 대해서도 몰랐다.
나는 몰랐다. ‘416합창단’의 노래를 몇차례나 들었으면서도, 노래하는 유족들 곁에서 “매 순간 부들부들 떨면서도 살며시 손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몰랐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팽목항의 컨테이너 성당에 기도하러 오는 부부에 대해서도, 이들이 말해준 상장례사람들, 그러니까 “수습된 시신을 아기 다루듯 하며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닦아준” 사람들에 대해서도 몰랐다. 유족들에게 청심환과 소화제를 내어주던 약사들, 기도를 올리던 성직자들, 실종자를 찾기 위해 매일 차디찬 바다에 뛰어들던 잠수사들, 안산과 진도를 오가며 유족을 실어 나르던 택시기사들, 실종자 가족을 챙기며 현장을 통제하다 슬픔에 겨워 진도대교에서 투신했던 경찰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세월호가 거대한 고통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변의 차돌처럼 아름답고 단단한 기쁨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 안의 사람은 지난 10년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굴하지 않고 떨쳐 일어났던 유족들과 그들의 손을 잡아주던 시민들이 가꾸어온 시간들에 대한 고마움에 겨워 울기도 했다는 것을. 당신께 이 책을 진심으로 권한다. 우리는 세월호를 모른다. 우리 정신의 바다에서 세월호는 아직도 인양되지 않았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깊은 바다 아래 모로 누워 있다.
고병권 탈시설장애인당 공동대변인·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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