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가격경쟁 안돼...국내 의류산업 전체가 망할 판”

2024. 4. 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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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상 찾는 동대문 도매시장 가보니
가격 저렴하지만, 테무와는 비교 안돼
보세 옷가게들 마진 남기기 어려워져
3일 오전 1시께 찾은 서울 중구 동대문패션거리의 한 도매의류상가 모습.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가 가장 바쁜 시간대다. 각 상가 내외부에서 옷가게 사장들과 대신 물건을 받으러 온 ‘사입삼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쪽 사진은 밤이 깊은 새벽 3시께 눈이 부신 조명이 일제히 켜진 동대문 패션거리 일대 모습. 이민경 기자

4월 초입, 봄 한 철 잠깐 입을 수 있는 얇은 트렌치코트가 동대문 도매시장에도, 이화여대 앞 보세 옷가게에도, 인터넷 쇼핑몰에도 주력 상품으로 깔렸다. 하지만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만 구매가 가능한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트렌치코트 가격은 4만원대, 이대 앞 보세 옷가게에서 비슷한 옷을 찾았더니 6만5000~8만5000원가량이었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유사 상품이 10만원에 팔렸다.

동대문 새벽시장의 도매가격이야 일반 소비자의 구매가 불가능하니 상관없다. 하지만 중국 직구(해외 직접구매) 사이트 ‘테무’가 문제다. 유사한 디자인의 트렌치코트가 테무에서는 2만9075원에 팔리고 있었다. 배송비도 무료였다.

‘말도 안되는’ 가격 책정에 옷가게 사장들의 수심은 커지고 있다. 테무와 알리는 국내 영업자도 아니라서 어디에 찾아가 따지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에서 3040세대 여성이 주로 입는 옷을 파는 상인 김모 씨는 “저는 큰 욕심 안 부리고 조금만 마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동대문에서 옷을 떼서 팔고 있다. 그런데 테무에선 도매 가격 이하로 판다. 게임 자체가 끝난 것 아니냐”고 한탄했다.

동대문의 한 상가에서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옷을 파는 업체 사장도 “걔네(테무·알리 익스프레스)랑 경쟁하다간 원단 값도 못 건진다”며 “중국 옷이랑 생산 단가 자체가 다른데, 겉으로 드러나는 가격만 비교하면 국내 의류산업 전체가 망할 판이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어두운 전망은 보세 옷가게 사장들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3일 오전 1시께 찾은 서울 중구 동대문패션거리. 디오트, 에이피엠 등 도매상가는 ‘사입 삼촌’들과 직접 시장에 옷을 사러 나온 여성 사장들로 붐비며 하루 중 가장 바쁜 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입 삼촌’은 동네 옷가게(소매상) 업주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동대문 도매상에서 옷을 사서 대신 가져다 주는 구매대행을 업으로 하는 남성을 가리킨다.

여기서 만난 사입 삼촌 김모 씨는 “그래도 아직까지 저희 손님 중에선 피부에 직접 닿는 옷은 중국산을 사는 걸 꺼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제가 진짜 ‘메이드 인 코리아’를 잘 구별해서 가져가 차별화 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 동대문 도매상가에도 중국산 옷과 국내 생산 옷이 섞여 있다. 대체로 원산지 표시가 안 되어 있기에 옷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어느 나라에서 생산했는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상인들의 조언이다.

경기 위축으로 동대문 도매시장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 데다, 중국발 저가 의류 공세까지 더해지지면서 이곳 상인들 분위기도 어두웠다. 동대문 도매상가에서 가죽 잡화 등을 파는 업주 A씨는 “코로나19 전만 해도 밤 11시부터 신당역에서 도매상가 앞쪽까지 커다란 쇼핑비닐을 들고 오는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고 했다. 이어 “오늘 본 인파는 그에 한참 못 미친다. 앞으로도 테무 같은 데에서 직구 소비가 늘어나면 우리는 더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소매 손님을 받으면 안 되지만 2개 이상 사면 특별히 (도매값에 판매를) 해주고 있다”며 “우리는 사장님들을 위해 싸게 파는거라 소매 손님한테 팔면 상도덕에도 어긋나고, 무엇보다 우리도 손해긴 하다”고 토로했다.

소비자의 가격 인식 체계가 혼란스러워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대 앞에서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한 가게 사장은 “손님이 가격표를 보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 얼마까지 생각하느냐, 현금으로 하면 깎아줄 수 있다고 제안하는데, (손님이) 생각하는 금액대 자체가 테무 이런 데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너무 낮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산 의류와 국내 생산 의류는 단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손님을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가게에서 청바지는 대체로 4만5000~5만5000원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같은 시간 테무에서는 ‘하이웨이스트 청바지’가 1만3983원에 판매중이었다. 6만원 가격표가 달린 여름용 블레이저는 테무의 1만8550원 ‘싱글 브레스티드 포켓 재킷’과 경쟁해야 한다. 업주는 “동대문에서 제가 사올 때 가격이 바지는 2만5000원, 블레이저는 4만원 정도”라며 “제 인건비, 가게 유지비를 고려하면 이 정도 마진은 남겨야 하는데 이걸 소비자는 너무 비싸다고 평가하니 맥이 빠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국내 패스트 패션은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알리, 테무 모두 이미 중국 내에서 쟁쟁한 e커머스 경쟁을 다 뚫고 선두주자가 된 플랫폼”이라고 했다. 이어 “여기에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글로벌 패션회사들이 위탁생산(OEM)을 맡기고 있기 때문에 이런 브랜드에서 특정 모델이 나온 순간 중국 공장에서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싼 값에 찍어낼 수 있다. 테무는 이 옷들을 배송비 무료에 말도 안되는 싼 값에 팔 것이고, 우리나라에 배로 그 옷들이 들어오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옷, 중국 플랫폼 불매 운동은 기대하기 힘든 일이라고도 이 관계자는 지적했다. 그는 “소비는 이념으로 재단되지 않는다”며 “그냥 내가 좋으면 사는 것이고, 지금 이미 많은 국내 소비자사 호기심에라도 테무에 들어가서 하나씩 구매하고 있다. 경험이 누적되다 보면 소비자는 쉽게 떠날 수가 없게 된다”고 했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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