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옆에서 메모하는 사람들, 정말 적고 있는 것일까?[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 기자 2024. 4. 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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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지도를 가거나 회의를 하면서 김정은이 하는 발언들은 북한 내부에서는 곧바로 역사가 되고 활동 지침이 된다.

한 간부의 수첩에는 김정은의 발언을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들 말고 김정은 '말씀'을 토시까지 기록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사진 앵글 밖에 기록 담당이 따로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북한의 김정은 발언 녹취 담당자가 어떤 방식으로 발언을 정리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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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024년 3월 31일 /노동신문 뉴스1
▶ 북한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라는 정부 통신기관을 통해 해외로 보내는 사진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옆에서 수첩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 수첩에는 정말 메모가 되어 있을까 하는 점 말이다.

▶김정은 옆 간부들이 수첩을 들고 있는 모습은 그의 권력이 얼마나 큰지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2013년 7월 3일자 노동신문에 실렸던 사진이 대표적이다. 회의실이 아닌, 어떤 건물 복도에 김정은의 전용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위에는 재떨이가 놓여있다.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군 간부 모자를 쓴 8명이 서 있는데 이들 모두 손에 수첩을 든 채 김정은을 응시하거나 수첩을 보고 있다.
10년도 더 지난 사진이지만 그 사진 이후에도 김정은 옆에 있는 간부들은 ‘말씀 기록용’ 수첩과 볼펜을 꼭 들고 있다. 나는 2003년부터 북한 사진을 지켜보고 있다. 물론 김정은 이전 김정일 시대에도 수첩을 들고 있는 간부들의 사진은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느낌이다. 합법적으로 수첩을 들지 않아도 되는 측근은 딸과 부인 그리고 경호원 정도이다.

현지지도를 가거나 회의를 하면서 김정은이 하는 발언들은 북한 내부에서는 곧바로 역사가 되고 활동 지침이 된다. 김정일 시대에도 그랬고 김일성 시대에서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발간하는 수많은 ‘어록’에는 정말 세세한 지시까지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조선시대에도 왕의 말씀을 기록하는 사관(史官)들이 있었고 왕조실록 편찬의 기초자료로 활용됐다. 일반적인 다른 국가에서도 최고지도자의 말은 기록되고 보존된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메모의 형식이 획일적이다. 수첩의 크기는 대체로 15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군대에서 나눠준 군인수첩이 연상된다. 표지 색깔은 초록색도 있고 갈색도 있는데 주로 갈색이 많이 보인다. 각 페이지의 오른쪽 위에는 “년 월 일”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궁금한 점은 정말 저 많은 사람들이 실제 필기를 하고 있을까 였다. 최근 북한이 배포한 사진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 2〉. . 2024년 3월 15일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강동종합온실 준공 및 조업식에 참석했다. 김위원장 오른쪽의 조용원 조직비서 등이 메모를 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한 간부의 수첩에는 김정은의 발언을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되어 있다. 우리의 메모 방식과 차이는 없다.

김정은의 국무위원장 최측근인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의 수첩도 보인다. 조용원의 수첩은 좀 더 간결하게 메모가 적혀 있었다. 조용원은 한 줄을 쓰고 한 줄을 띄우는 방식으로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게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부족하다. 소위 풀 텍스트(full text)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 말고 김정은 ‘말씀’을 토시까지 기록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사진 앵글 밖에 기록 담당이 따로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사진을 좀 더 찾아보았다. 조용원(김정은 오른쪽 안경 낀 사람)의 수첩 밑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사진 3〉 왼쪽 사람의 수첩에는 비교적 자세한 문장이 쓰여 있다.
수첩 밑에 어떤 물체가 보인다(사진 3의 오른쪽이 조용원 조직비서의 손이다). 우리로 따지면 폴드 스마트폰 같은 물건을 수첩 아래에 들고 다니는데 다른 수행원들 손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최근 사진을 쭉 살펴보니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모두들 메모하되 조용원은 스마트폰을 수첩 아래 녹음 모드로 든 채,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하는 방식”인 것이다.
〈사진 4〉위쪽에 보이는 수첩이 조용원 비서의 수첩이다. 핸드폰이 보인다.
상상력을 덧붙이면, 조용원의 스마트폰에 녹음된 음성파일은 북한의 역사 담당자에게 전달될거고 그렇게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기자들은 취재원의 발언을 녹음한 후, AI프로그램의 도움으로 녹취를 푸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김정은 발언 녹취 담당자가 어떤 방식으로 발언을 정리하는지 궁금하다. 보안을 생각한다면 일일이 타이핑을 할테고 효율을 생각한다면 기술에 의존할 텐데 말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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