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뻔한 소리' 할 거면 통화는 왜…바이든-시진핑 통화 내막
현지시간 2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자 대면 회담을 한지 넉 달여 만입니다. 지난해 양자 회담에서 바이든과 시진핑은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과 중국의 정찰풍선 사태 이후 일촉즉발로 치닫던 양국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중국 "바이든이 먼저 요청"
이번 정상 통화는 지난 1월 양국 외교안보 책사인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태국에서 만나 협의한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11월 정상회담 후 실무 협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이를 다시 한번 튼튼히 다지기 위한 정상차원의 소통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발표문을 보면 1시간 45분 통화가 무색할 만큼 지난해 정상회담 결과에서 뭔가 진전된 내용이 없습니다.
이럴 거면 통화는 왜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왜 전화 통화를 하자고 한 걸까요? 먼저 통화를 요청한 쪽은 중국 측 발표에도 나오듯 미국입니다. 미국은 설리번-왕이 회동 후 중국 측에 통화를 요청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상당 기간 중국이 뜸을 들였고 이번에 성사됐다는 후문입니다.
바이든, '나약한 지도자' 이미지 벗기
먼저 중국에 손을 내민 미국 상황부터 살펴봅니다. 현재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나약한 지도자 이미지'입니다. 가뜩이나 나이 문제로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이런 이미지는 선거 운동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이를 익히 아는 트럼프도 틈만 나면 자신이 대통령일 때는 지금 같은 혼란은 없었다며 바이든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인 자신과 달리 바이든을 얕보였기 때문에 푸틴이나 하마스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실 외교문제는 미국 국내 정치, 특히 선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건 자신들이 먹고 사는, 또는 자신들의 안전에 관한 문제가 우선입니다. 그런데도 바이든이 이 문제에 신경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지' 때문입니다. 현대 민주 정치에서 이미지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사실이건 아니건 중국을 상대로 온갖 엄포를 놓았던 트럼프가 미국인들에게 '강한 미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바이든으로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수행은 물론 중동 확전 여부를 중요 고리인 이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의 협조가 절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미국 편에 설리 없겠지만 최소한 문제를 더 이상 키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설사 중국이 이를 모두 거부한다 해도 가뜩이나 국제 정세가 엉망인 상황에서 중국과의 직접 마찰을 피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성과인 셈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정상회담 후 타이완 해협에서 종종 발생하던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 간 위기는 더 이상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진핑, '권위 세우고 추가 규제 막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진핑 입장에서는 침체된 경제가 시급한 과제입니다. 경제 회복세 둔화와 높은 청년실업, 부동산 버블 붕괴 위기 등 문제가 산적했다는 건 비밀이 아닙니다. 바이든과의 통화에서 시 주석은 "미국은 중국에 대해 끝없는 경제, 무역, 기술 억압 조치를 취했으며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목록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이 아니라 위험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바이든이 이런 비판을 수용할까요?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 바이든은 "부당한 무역과 투자 제한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의 선진 기술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약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빈손은 아닙니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첨단 기술 통제를 지금 수준에서 유지해주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없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나 중국이나 서로 더 상황을 악화만 시키지 않으면, 즉 현상유지만 해줘도 서로에게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중국이 얻는 건 또 있습니다.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는 특히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바로 '지도자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겁니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이 같은 반열에 있다는 걸 늘 강조합니다. 이번 통화에서도 "중국과 미국 같은 두 대국은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상생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중국 측이 정상 통화를 보도하면서 이번 전화 통화가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사실 세계에서 제일 바쁜 미국과 중국 지도자가 아무 득도 없는 일에 2시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할 리 없습니다. 두 정상이 1시간 45분을 소비했다면 그 밑에서 이를 준비한 각료 등 실무진이 들였을 시간과 노력은 몇 배가 될 것입니다. 미중이 각자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일단 급한 시기에 서로를 자극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다만, 올 연말 미국 대선이 끝나고 중국이 체력을 회복하고 난 뒤에는 또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를 일입니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우리에게는 야속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진=AP, 연합뉴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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