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감독 선임 기준이 ‘한국적 분위기’라고?

박효재 기자 2024. 4.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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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방향·사령탑 자질 등 핵심 피한 채 모호한 답변…‘주먹구구식 선임’ 되풀이 우려
“국대감독=명예로운 자리” 현직사령탑 빼가기 가능성도 시사…K리그 발전 안중에도 없어
정해성 축구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제5차 전력강화위원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적인 분위기에 개인적으로 어떤 준비가 돼 있는지를 분명히 파악해서 가장 적합한 감독을 선택하겠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책임질 차기 사령탑이 어떤 축구를 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정 위원장은 앞으로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차기 사령탑에게 요구할 가장 중요한 자질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한국적’이라는 단어만 반복하는 모호한 답변뿐이었다. 협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없다는 것만 뚜렷하게 보여줬다. 협회가 앞선 실패와 비판 여론에도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반복하면서 제대로 된 감독 선임을 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만 커진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 위원장이 대표팀 감독은 명예로운 자리라고 강조한 것이다. 국내파 현직 감독도 후보군에 있고, 늦어도 5월 중에는 정식 감독을 선임한다는 계획으로 보면 시즌 도중 K리그 현직 감독을 빼 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 우선주의적 시각으로 K리그 발전은 안중에 없다는 듯한 인식을 또 한 번 드러냈다. 현실화하면 K리그 소속팀 팬들과 갈등은 이전보다 훨씬 격렬하게 빚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협회는 과거 시즌 도중 K리그 감독을 빼 온 사례가 있다. 2011년 당시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이끌다 전북으로 돌아갔고, 월드컵을 1년 앞둔 상황에서 홍명보 현 울산 HD 감독이 소방수로 투입됐다.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홍 감독은 짧은 대회 준비 기간에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결과를 냈고, 감독 커리어가 한 번 크게 꺾였다. 홍 감독은 최근 공개된 구단 다큐멘터리 ‘푸른 파도 2024’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이후 정식 감독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에 대해 “내 생각은 빠지고 내정설이라는 프레임까지 제기됐다. 그 가운데서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협회가 K리그 현직 지도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홍 감독은 여전히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외국인 지도자 후보군에 대해서 전술적인 역량이나 색채보다 한국적 분위기 적응을 강조한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사실 협회는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 체제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세웠을 때를 제외하면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전술적인 방향을 제시한 적이 없다. 정 위원장이 한국적 분위기 적응을 강조한 이유는 클린스만 재임 당시 해외 재택근무, 겸업 논란, 선수단 방치 등으로 인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내로라하는 구단에서 수준 높은 훈련, 선수 관리 시스템을 경험한 선수들이 선수단 융화만 강조하는 감독의 지도를 얼마나 따를지는 미지수다.

협회는 정식 감독 선임을 늦어도 5월 중에는 마무리하겠다며 서두르고 있다. 한국은 월드컵 지역 2차 예선 C조에서 3승 1무로 선두에 올라 있다. 조 2위까지 3차 예선에 오르는데, 조 3위 태국과의 승점 차이는 6점이다. 한국이 싱가포르·중국과의 2경기를 다 지고, 태국이 남은 경기에서 다 이기면 동률이 되지만 골 득실에서 한국이 +11로 -2인 태국에 크게 앞서 있어 사실상 3차 예선은 확정했다고 봐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6월 전까지 감독 선임을 미루는 것은 무리라며 급하게 감독을 선임하려고 하다가 제대로 된 감독을 선임하지 못할까 하는 우려만 커진다.

정 위원장이 반복한 ‘한국적’이라는 단어가 현실 타협을 가리려는 미사여구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한국적인 분위기 적응이라는 측면에서는 외국인 지도자가 한국인 감독을 이겨낼 수 없다. 클린스만 위약금 지급으로 재정 여력이 없는 협회가 이미 국내 감독으로 결론을 정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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