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집단의 선택은 언제 파국으로 가는가

2024. 4. 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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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세계인 49%가 한 표 행사
깊이 고심해야 현명한 결정 도달
특정 집단·가짜정보에 휘둘려
잘못된 선택 땐 전체가 길 잃어

2024년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선거의 해’다. 한 해 동안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최소한 전 세계 64개국에서 크고 작은 선거가 치러지고, 미국 TIME 매거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49%가 어떤 형태로든 투표에 참여하게 되는 해라고 한다. 물론 모든 투표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선거는 형식적일 뿐 후보 선정 과정에서부터 답이 정해져 있어 실제로 큰 의미가 없고, 미국의 대선처럼 투표 결과의 영향이 한 나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치는 선거도 있다.

우리는 왜 투표를 하는 것일까? 한 사회 또는 시스템의 구성원들이 각각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하나로 모여서 리더나 생존전략을 결정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계에 존재해 왔다. 한 개체가 주변 환경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적이며, 생존전략 선택의 폭도 훨씬 좁은데, 각각의 개체가 모여서 공동의 선택을 하게 되면 생존에 훨씬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의 이아인 쿠진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집단 선택의 패턴은 박테리아, 갑각류부터 시작해 물고기떼, 철새떼, 그리고 침팬지 집단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만약 먹이를 찾으러 이동하던 무리 중 49마리의 개체가 목표물 A를 향해 가고, 51마리의 개체가 목표물 B를 향해 간다면, 어느 순간 전자의 그룹에서 점점 많은 이탈자가 생기면서 결국은 더 많은 숫자의 구성원이 있는 후자의 그룹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다수결의 원칙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자연계에 존재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다수가 선택한 전략이 실제로 더 생존에 유리할까? 군중의 지혜 (Wisdom of the Crowd)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다. “이 황소의 무게는 얼마일까요?”처럼 무작위하게 던져진 어떤 종류의 질문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수의 군중이 각자 답을 하게 되면 모든 개인들의 예측의 평균치가 정답에 근접하는 현상이다. 상당히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복적으로 실험을 해보면 실제로 많은 수의 예측이 모일 때 더 적은 숫자의 개체가 예측한 것보다 정확하게 답에 근접한다. 자연계에서 다수의 선택을 따라가는 행동 패턴은 실제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얘기다.

다수의 선택이 유리하지 않은 경우는 없을까? 각각의 개체들이 독립적으로 선택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사전에 퍼뜨린 정보에 영향을 받게 되면 ‘군중의 지혜’ 메커니즘은 무너진다. 또한 일부 개체들이 결탁하여 특정 선택을 지지하며 그룹의 힘으로 컨센서스(Consensus)를 만들려는 시도를 할 때에도 집단 지성은 발휘되지 않는다. 이러한 때에는 오히려 예측치가 중앙값으로부터 크게 벗어나며 정답을 맞힐 확률이 떨어진다. 각각의 개체가 스스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없게 가짜 정보가 퍼뜨려지거나 독립적인 선택이 저해되고 일부 집단이 선택을 좌우하려 할 때 집단 지성은 집단 무지성으로 변하는 것이다.

다수가 좋지 않은 선택을 반복할 때 집단 전체는 길을 잃는다. 먹이를 찾거나 집을 지을 때 생존에 불리한 선택이 많아지면, 집단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작아지고 후퇴한다. 이때 개체 간 단절과 갈등은 늘어나게 되고 더 많은 소수의 이익집단이 생겨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다시금 집단이 더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집단의 크기는 더 감소하며 악순환은 가속화된다. 결국 파국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비슷한 양상으로 갈등과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정보 과잉을 경험하고 독립적인 선택을 하는 능력을 잃어서, 그리고 일부 특수집단의 정보 독점 및 인위적으로 다수의 선택을 좌우하려는 노력 때문에 심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집단 지성이 발휘되지 않는 이유는 어찌 보면 현 세대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일 수도 있다.

올해가 선거의 해라는 것은 개인의 선택권이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 해라는 것이다. 각 개인이 깊이 고심하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할 때 우리는 더 현명한 결정에 가까이 갈 수 있다. 타인의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일부 그룹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우리가 집단 무지성에 물들지 않고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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