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만의 문제 아냐…플랫폼기업의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

윤준호 2024. 4. 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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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
“배달 조금만 늦으면 계정 정지”
“플랫폼 기업의 대규모 감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

“완전히 발가벗긴 채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훈육을 당하는 기분이에요.”

대리기사 A씨는 대리운전업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증언했다. 어느 날 그는 손님과 사소한 말싸움을 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으로부터 불만 신고를 접수한 대리운전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업체는 어찌 됐든 기사의 잘못이니 A씨에게 손님한테 사과하라고 했다. 억울했던 그는 하소연을 해봤지만 ‘기사님은 우리 업체와 안 맞는 것 같으니 계정정지를 시키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화가 나 그렇게 하라고 응수했다. 다른 업체로 가서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A씨는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해당 업체에서 어떤 이유로 계정정지를 당했는지 다른 업체에도 공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사 정보가 다른 업체에도 넘겨지고 있다”며 “다른 업체에서 콜을 받으려고 했더니 과거 타사에서 계정정지 이력을 들먹이며 배차를 안 해줬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쿠팡대책위,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녹색정의당 양경규·심상정 의원과 진보당 강성희 의원과 공동으로 ‘플랫폼 기업에서 노동자 통제도구로서 블랙리스트’ 토론회를 3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문제가 쿠팡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자에게 일감을 주지 않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를 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 모습. 녹색정의당 양경규 의원실 제공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블랙리스트가 대리운전 기사, 배달 라이더 등 여러 플랫폼노동자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오 집행책임자는 “배달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라이더를 비롯한 플랫폼노동자는 언제든 누구나 일감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일한다”며 “배달이 조금만 늦거나 고객 별점이 안 좋으면 인간이 짜놓은 코드로 동작하는 알고리즘의 실시간 평가로 언제든 계정정지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쿠팡에서는 중간관리자들이 블랙(플랫폼 퇴출) 여부를 판단하지만 플랫폼에선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3일 서울시내 한 주택가에 음식배달 종사자들이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들은 대규모 감시와 개인정보 수집 시스템이 개인정보보호법뿐만 아니라 고용상 차별을 금지한 국제 협약과 노동관계법에 모두 저촉된다고 비판했다. 김혜진 쿠팡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일반 기업에선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사람을 블랙리스트에 올렸지만 플랫폼 기업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올린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정성용 쿠팡물류센터지회장도 “현장 관리자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당장 내일 출근하지 못하고, 영구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밖에 없으니 노조 가입은 상상조차 못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쿠팡 블랙리스트 법률대응팀 이수열 변호사는 “현재 플랫폼 기업들이 합법이라 주장하는 블랙리스트는 취업금지라는 심각한 권익침해에 대해 당사자에게 명확한 기준이나 사유, 심지어 처분 자체도 공개되지 않는다”며 “이런 심각한 불이익한 조치들이 플랫폼 기업의 자의적 판단에만 맡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채용에 참고하기 위한 용도나 정도가 아니라 어떤 사유인지와 관계없이 그 리스트에 등재돼 있기만 하면 바로 취업이 금지되는 방식의 노골적 취업방해 행위”라며 “플랫폼 기업이 최소 3년 넘게 취업지원자들의 자료를 파기하지 않으면서 블랙리스트로 활용하는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부연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쿠팡 블랙리스트 건과 관련해 고소·고발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측은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이 바뀐 만큼 노동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두고 플랫폼 기업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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