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의 마크, 거리의 간판 되다 [맥락+]

공병훈 교수, 최아름 기자 2024. 4. 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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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공병훈의 맥락
상인조합 길드의 탄생❸
사회·경제적 구조 만든 길드
지역 내에서 강력한 힘 보유
제작 상품에 마크 새기기도
현대에서는 간판으로 발전

상점의 간판, 기업의 로고…. 이런 표식表式들은 대체 언제부터 유행한 걸까. 관련 서적을 살펴보면, 중세시대부터 현대식 '마크(Mark)'가 나타났다. 물론 로마시대에 술집 가게들이 '관목가지'를 문 앞에 걸어두긴 했지만, 그걸 현대식 마크의 기원으로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마크는 어디서 나왔을까. 답은 '길드(Guild)'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길드가 만든 마크는 상표의 효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1~16세기 유럽에서 번성한 길드는 경제적ㆍ사회적 구조의 핵심을 차지했다. 장인匠人의 집합체였던 길드는 지역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국왕의 허가를 받고 거래의 독점체제를 수립하는 한편, 상품의 질과 거래 관행의 보전을 위한 기준을 세웠다. 거래 상품과 필수 일용품의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길드의 책무였다.

이 때문인지 13세기 무렵 서유럽 길드엔 그 지방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시민들이 다수 속했다. 12~13세기에는 길드가 시의회를 지배하기도 했다. 그만큼 길드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상인조합 길드의 탄생' 2편(통권 587호)에서 언급했듯, 길드엔 장인만 가입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장인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해진 기간에 도제徒弟로 일해야 했다. 도제는 장인으로부터 직업 교육을 받는 제자를 뜻한다. 도제를 거쳐 직인職人(도제와 장인의 중간단계)에 오르면 낯선 도시와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기 위해 먼 거리를 떠나야 했다.

모든 도제가 장인에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길드는 장인의 수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울러 길드에 속하지 않은 낯선 상인의 침입을 규제하고, 외지의 값싼 상품이 지역으로 흘러들어오는 걸 막았다. 이렇게 길드는 '폐쇄성'을 발판으로 신뢰와 영향력을 동시에 얻었다.

흥미로운 점은 길드가 '유행의 거점' 노릇도 톡톡히 했다는 거다. 중세시대엔 길드를 중심으로 상품에 '마크(Mark)'를 넣는 게 유행했다. 그중엔 유명 마크를 모방한 가짜 마크도 있었다. 요즘 말로 따지면 짝퉁 브랜드다. 그만큼 길드의 장인이 제작한 걸작품(Masterpiece)은 인기가 높았다.

가령, 12세기 이탈리아에선 상인이나 길드가 타인 또는 다른 길드의 마크를 사용할 수 없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마크를 칼에 새기는 것도 금기禁忌였다. 마크의 유행은 문맹 비율이 높았던 중세 유럽의 상황도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쨌거나 이런 마크들은 동양의 상표商標나 서양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의 효시가 됐다. 특히 직관적인 그림으로 만든 길드의 마크와 휘장(Curtain)은 상점의 간판, 기업 로고, 상품 마크로 이어졌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면서 상가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진 '술집이 가게 앞에 관목가지를 묶은 다발을 내걸던 풍습'은 이내 사라졌다. 마크가 유행한 이후 어떤 가게는 그림이 아닌 상품실물을 내걸기도 했다.

처음엔 형태가 단순했지만, 나중에는 디자인 감각을 가미해 볼 만한 것들이 많아졌다. 문맹률이 높아서 사람들은 그림 간판을 선호했는데, 상품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간판에 문자를 넣기도 했다.

여관의 표식도 달라졌다. 여관에는 여러 계층의 여행자나 지방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인을 위한 십자가 장식을 그려놓은 곳이 나타났다. 이교도인을 위한 태양과 달의 그림 간판도 유행했다. 목로주점(선술집)은 단속이 필요해서 반드시 간판을 걸도록 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간판 기술도 발달하고 간판을 만드는 화가나 대행업자들이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길드가 만들어낸 역사다.

공병훈 협성대 교수 | 더스쿠프
hobbits84@naver.com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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