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한은 돌봄 보고서가 말하지 않는 것

손제민 기자 2024. 4. 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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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지난달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공개했다. 돌봄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에 대처하기 위해 이 일을 이주노동자에게 맡기고 임금을 낮추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경제학자인 한은 총재가 힘을 실어준 이 보고서는 노인·육아 돌봄을 모두 다루는데, 핵심은 노인 돌봄에 있다. 육아 돌봄은 상대적으로 인력 부족이 덜 심각하고 가정과 사회, 국가가 어떻게든 감당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노인 돌봄은 어느 주체도 흔쾌히 떠맡지 않으려는 현실이 보고서에 녹아 있다.

앞으로 점점 더 돌봄 인력이 모자랄 것이라는 통계 전망에 전문가들도 수긍하는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40.4%로 매우 높다. 현 상태를 방치하면 피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게 된다. 이것은 사회가 직면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한은의 처방은 실망스럽다. 저자들은 개별 가구와 이주노동자의 사적 계약을 통해 최저임금 적용을 우회하거나, 돌봄을 고용허가제에 포함하고 이 업종의 임금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한다. 첫번째 방안에 대한 비판은 차별적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우회해 이주노동자 임금을 낮추더라도 그들의 숙식 제공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여러 문제가 남는다. 두번째 방안은 내국인의 같은 노동에 대한 처우도 낮춘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그러면 돌봄이 지금보다 더 열악한 일이 될 수 있다. 내국인 돌봄 종사자 대부분이 중년 여성이거나 곧 노인이 될 사람들이다. 이들의 빈곤화는 저자들이 해결하려는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저자들은 저임금 덕에 해고와 고용이 유연해지면 “민간 보험회사 등이 관련 산업에 진출하여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노인 돌봄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결국 돌봄의 공공성 강화라는 선택지를 배제하려다보니 손쉬운 시장적 해법으로 직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고서는 통계와 합리성으로 포장돼 있지만, 노인과 돌봄에 대한 편견을 깔고 있다. “가족에게 의존” “재정 부담”이라는 표현은 노인에 대한 시선을 집약한다. 노인은 ‘미래 노동력’인 아동과 달리 ‘쓸모’나 ‘능력’이 없는 존재로 간주된다. 그런 노인을 돌보는 일은 가족도 기피할 정도로 힘들고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되는 ‘생산성 낮은’ 노동이라는 인식을 당연하게 전제한다.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는 게 최우선인 사람들로서는 이 분야에 쓸 돈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이러한 접근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 영화 <플랜 75>에서 그 암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국가가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의 미래를 다룬다. 국가가 노인 안락사를 대행하는 데 쓰는 돈이 돌봄의 공공성 강화 비용보다 더 적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 국가는 “미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설파하고, 노인들은 “폐 끼치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그 대열에 동참한다. 섬뜩한 사고 실험이지만 쓸모와 효율성만 중시한다면 그렇게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 문제는 사람이 태어나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닿아 있다. 나는 이와 관련해 작은 희망의 단초를 정년을 앞둔 한 남자 선배의 홀가분한 표정에서 찾고 싶다. 그는 은퇴 후 삶을 아버지 간병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그동안 주 돌봄을 누이(와 주간보호센터)에게 맡겨둔 데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사랑하는 이의 여생을 더 늦기 전에 함께할 수 있게 된 데 대한 기대감도 느껴졌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들 돌봄’의 경험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 돌봄이 남성의 몫이기도 할 때 그 일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인정받고 사회의 책임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은 삶의 시작이나 마무리뿐 아니라 가장 왕성한 시기에도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다. 인생의 어느 단계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일 수 있다. 그 일을 힘들고 ‘생산성 낮은’ 일로만 여길수록 더 외면하고 싶고, 그 시간에 우리는 무얼 위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경제학자들이 ‘생산적’이라고 하는 활동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노인과 돌봄에 대한 편견을 들여다보면, 결국 경제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배반당한 믿음을 발견하게 된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의 노인들, 그리고 매년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한번 따듯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손제민 논설위원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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