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과거의 벽 깨는 ‘문학의 힘’
1692년 1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보스턴 인근 한 마을에서 두 소녀가 발작 증세를 보였다. 의사는 한 달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자 소녀들이 “악마의 손에 떨어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추궁이 계속되자 소녀들은 노예 출신 하녀와 부랑자들이 자신들을 저주했다고 지목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다는 허황된 주장이 난무하는 와중에,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기소되었다. 결과는 끔찍했다. 19명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1명이 고문 끝에 죽었으며, 옥사한 사람도 여럿이다. 총독이 나서서 마녀재판 법정을 해체하고서야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집단 광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종종 언급되는, 그 유명한 ‘세일럼 마녀재판’의 간략한 전말이다.
“종교와 법률이 거의 동일”한 곳이었던 보스턴의 한 마을. ‘헤스터 프린’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처형대 위에서 조리돌림당하고 있었다. 헤스터의 웃옷 가슴에는 “화려한 주홍빛 헝겊에 금실로 꼼꼼하게 수를 놓아 환상적으로 멋을 부린 ‘A’자”가 선명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그는 간통(Adultery)의 머리글자인 ‘A’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만 했다. 맞다. 너새니얼 호손이 1850년 발표한 장편 <주홍 글자>의 시작 대목이다.
한편 처형대보다 높이 자리한 교회당 발코니에 총독, 판사, 장군 등과 함께 자리한 딤스데일 목사의 마음은 지옥과도 같았다. 옥스퍼드대를 나온 재원으로 젊은 나이에 이미 학문적 깊이가 남달랐던 그였다. 그는 처형대 위에 선 헤스터가 안고 있는, 채 석 달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 펄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이후 줄거리는 각설한다. 언젠가부터 헤스터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삯바느질로 연명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물심양면 도운 헤스터를 향해 사람들은 ‘저 A가 능력(Able) 혹은 천사(Angel)의 A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53년 발표한 희곡 <시련>의 배경 역시 보스턴 인근 마을, 정확히 말하면 ‘세일럼’이다. 패리스 목사의 조카 애비게일은 연정을 품은 존 프록터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증오한다. 마침 마을 소녀들이 벌인 작은 모임이 마녀 재판으로 번지고, 애비게일은 엘리자베스를 없앨 치밀한 계획에 돌입한다. 고발당한 사람들의 손가락은 차곡차곡 쌓여 엘리자베스에게로 향한다. 존 프록터는 마녀로 고발된 아내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추적한다. 집단의 광기에 맞선 존 프록터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너새니얼 호손은 19세기 중반, 무너질 대로 무너진 청교도 정신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청교도 정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거칠게 말하면 마녀사냥을 피해 낯선 땅에 정착한 이들이 정작 마녀사냥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사건이 세일럼 마녀재판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100여년도 전에 일어난 세일럼 마녀재판에 대한 개인적 부채의식도 있었다. 고조부 존 호손이 당시 마녀재판을 담당한 판사 중 하나였다. 그런가 하면 아서 밀러는 1950년대 미국을 휩쓴 광풍인 매카시즘을 세일럼 마녀재판에 빗대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특히 거대한 규범 혹은 사회적 이념이 작동하는 방식을 철저히 해부하며, 그 속에 늘 개인적 이익이 결부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문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문학은 재미라는 단언도 어불성설이다. 외려 문학은 과거 모습을 들춰내고, 당대 모순을 비추며, 미래를 열어가는 하나의 상징이다. 문학을 읽는 사람들에게 내린 하늘의 축복은 아마도, 오롯한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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