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룡대전'이라더니...TV토론 사전녹화 비공개에 기자들 분통
기자들 "토론회에 엠바고가 어딨나" 갑작스런 공지에 당황
"과거 일로 싸워 계양을 비전 제시는 뒷전" 토론회 비판도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4·10 총선 인천 계양을 후보자 토론회 관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원희룡 국민의힘 후보가 사전녹화 비공개 결정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현장에서 돌연 비공개 공지를 접한 경기·인천 지역 언론의 기자들은 당황스러웠던 분위기를 전하며 비공개 조치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원희룡 후보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고 당초 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토론회가 이재명 후보 측 요청으로 비공개로 전환됐고 보도유예(엠바고) 방침도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원 후보는 “TV 토론회 녹화 시작을 불과 1시간 남겨두고 이 후보 측의 일방적 주장에 의해 비공개로 전환돼 엠바고가 내려졌다”며 “비공개로 방침이 바뀌어 당초 합의는 깨졌고, 일방적으로 이 후보 입장만 수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후보 측은 토론회가 본 방송되기까지 엠바고를 요청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이 후보측은 같은 날 입장문에서 “이재명 캠프가 토론 방송을 취소하고 비공개로 전환해달라고 주장한 사실은 전혀 없다”며 “법정방송토론이 선관위가 정한 일시에 맞춰 전파를 타기 전까지 엠바고를 요청하는 것은 상식이다. 엠바고를 비공개라고 주장한다거나, 엠바고 파기 및 파기 시도를 하며 공정한 언론취재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실제 토론회 본방송 전날인 지난 1일 오후 2시 경기 부천 OBS경인TV에서 두 후보의 TV토론회 사전 녹화가 진행됐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사전에 OBS로부터 기자실에서 토론 현장 중계 TV 시청을 통해 취재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공지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OBS는 사전녹화를 시작하기 불과 1시간 전 기자실 TV 중계를 진행하지 않는다며 본방송 종료 시점까지 엠바고를 설정했다고 공지했다. 현장에서 토론회를 기다리던 10명 이상의 기자들은 돌연 철수해야했다.
OBS측은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결정에 따른 공지였다는 입장이다. OBS 보도국 관계자는 3일 미디어오늘에 “토론회를 주관하는 선관위의 결정에 따라 OBS에서 기자실에 공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계양구 선관위는 같은 날 미디어오늘에 “OBS에서 전반적으로 토론회를 공개하는 쪽으로 요청해 후보자측에도 (공개에 대해) 사전 전달은 됐었다”며 “당일 2시간 전 OBS에서 특정 후보자측에서 공개를 안하는 것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고 연락했고, 선관위가 상대편 후보자에 연락해보니 일단 유감이긴 하지만 따르겠다고 답해 다시 전달했다. 이후 OBS에서 구체적 엠바고 시간 등에 대해 조율했다”고 말했다.
현장 기자들 “토론회에 엠바고가 어딨나” 비판
현장에서 토론회 취재를 대기하다가 철수하게 된 경기·인천 지역신문 기자들은 갑작스런 공지가 당황스러웠단 입장을 보였다. 당일 오전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계양갑 후보자 토론회는 기자들에게 공개됐기에 더 황당했다는 주장이다.
현장에 갔던 A기자는 3일 미디어오늘에 “OBS에서 녹화를 공개하는 걸로 이미 사전에 공지했었고 사진기자까지 합치면 15명 이상의 기자들이 현장에 와있었다. '명룡대전'이라고 불리니 관심이 높았다”며 “다들 대기하고 있었는데 시작 한 시간 전 갑자기 (공개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왔다”고 말했다.
같은 현장에 있었던 B기자도 “기자들 모두 당황했다”며 “오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계양갑 토론회를 했고, 이후 계양을 토론회를 보려는데 갑자기 안 된다니까 많이 당황스러웠다. 다 철수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장 소식을 접한 기자들도 당혹감을 전했다. C 기자는 “다들 현장까지 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비공개 전환이 이뤄져 두 후보 신경전 때문에 오락가락하는구나 싶어 당황했다”며 “기자들이 제일 바쁜 시간에 와서 취재하라고 자리까지 만들어 놓고 두 후보 신경전에 말렸다는 분노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D기자는 “토론회에 엠바고가 어딨나”라면서 “어차피 가봐야 TV토론을 보고 써야되는데, 엠바고라고 하니 갈 이유가 없겠다 싶어 안갔다”고 했다.
기자들은 특히 토론회 녹화에 대한 비공개, 엠바고 결정이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A기자는 “녹화 토론회 같은 경우 그동안 방송사에 항상 기자실이 마련됐고 녹화를 생중계 해주면 기사를 바로 쓸 수 있는 구조였다”며 “(토론회 녹화를 비공개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D기자는 “보통 방송사에서 토론회가 녹화방송이면 먼저 취재를 와달라고 하고 기자석을 만들어 놓는다”며 “엠바고 결정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했다.
B기자는 “인천에선 당초 부평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다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이런 경우가 없었다”며 “통상적으론 토론회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면서 미리 언론 보도를 내는 것에 대해 다른 후보들은 아무렇지 않게 허용하는데 좀 더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토론회 내용을 보니 크게 나올 것도 없는데 뭐 때문에 숨기고 민감하게 생각하는지 의아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번 계양을 토론회 자체가 상대를 비방하는 것에 치중돼 소모적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C기자는 “'명룡대전'이라고 이름 붙은 싸움이 너무 소모적으로 흘러가서 아쉽다”며 “누구 정책이 더 낫다는 평가가 안되고 과거 일로 싸우니, 계양을 비전 제시는 뒷전이고 싸움만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워낙 원 후보측에서 공격적이기도 하고 이 후보도 당대표를 하며 지역구를 못챙기는 등 복합적 요인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B기자도 “상대방한테 '너 장관할 때, 너 지역구 국회의원할 때 뭐했어? 한 거 없잖아?'가 주 내용이었다”며 “장관 출신 후보와 당대표 후보가 선거를 치르는데 일반 후보보다도 더 격이 낮은 토론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혹평했다. D기자도 “어떤 법을 만들고 국정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야하는데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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