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김건희 여사 비판 보도에 '대국민 기습사과'...문 전 대통령 '돌발영상'은 불방

남보라 2024. 4. 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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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 신임 사장 취임 3일만
YTN 민영화 후 첫 사장
KBS 대국민 사과와 판박이
언론계 "낯뜨거운 충성맹세"
정부 비판 '돌발영상' 불방 결정
YTN이 3월 오전 송출한 김백 신임 사장의 대국민 사과. YTN 캡처

KBS에 이어 YTN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한 것을 사과했다. 30년 간 공기업 소유였던 YTN이 지난 2월 사기업인 유진그룹에 매각돼 새 사장이 취임한 지 3일 만이다. YTN 구성원들과 언론단체들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보도에 대한 사죄이자 낯뜨거운 충성 맹세"라고 비판했다.

한편 YTN은 이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돌발영상'을 방송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백 사장 "불공정 보도 선거 때 독버섯처럼 반복"

YTN은 3일 오전 김백 신임 사장의 '대국민 사과'를 방송했다. 미리 녹화한 3분38초 분량의 영상에서 김 사장은 YTN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편파 보도를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특히 언론의 기본 중 기본인 균형추를 상당히 잃어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인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보도했다”고 말했다.

또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오세훈 시장(당시 국민의힘 후보)의 ‘생태탕 의혹’ 보도,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도 YTN의 불공정 보도 사례로 꼽았다. 김 사장은 “문제는 이런 불공정‧불균형 보도가 선거 때만 되면 독버섯처럼 반복됐다는 점”이라며 “공정하고 정확해야 할 언론의 펜 끝이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절대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과에만 그치지 않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부당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YTN을 국민 여러분께 돌려드리겠다”고 말을 맺었다.

YTN이 3월 오전 송출한 사과 방송에서 김백(왼쪽에서 세번째) 신임 사장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YTN 캡처

언론계 "낯뜨거운 충성 맹세" 비판

언론계에서는 이 사과가 권력에 대한 ‘충성 맹세’라는 비판이 거세다. 전국언론노조 YTN지부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대국민 사과라고 하지만 실상은 ‘용산’(대통령실)을 향해 엎드린 것”이라며 “YTN 사장이라는 자가 권력을 향해 용서를 구한 오늘은 30년 YTN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날”이라고 밝혔다. 또 김 사장이 언급한 ‘편파 보도 사례’는 문제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건희 여사가 겸임 교수 지원서에 허위 경력을 썼다고 YTN이 단독 보도한 후 김 여사 측은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었다”며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는 법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중징계를 집행 정지 결정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언론노조도 성명서를 내고 “(사과 방송은) 누가 봐도 충성 서약이다. 사과 대상은 '국민'이라고 했지만 발언 하나하나가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심기를 건드린 보도에 대한 사죄였고, 방심위의 위헌적 국가 검열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충성 맹세"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사장의 대통령 충성 서약은 YTN 민영화가 말로만 민영화일뿐 정권이 청부한 언론 장악임을 명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윤 정부 첫 방송사 사장들의 판박이 사과

김백 YTN 사장이 지난 1일 YTN 구성원의 항의를 받으며 취임식장을 나서고 있다. 언론노조 YTN지부 제공

이날 사과 방송은 기습적으로 송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YTN 노조에 따르면 이 영상은 강당에서 비밀리에 촬영했으며, 뉴스PD를 거치지 않은 채 뉴스 시작 전 광고와 캠페인 등을 내보내는 주조정실을 통해 기습적으로 송출됐다.

김 사장은 지난 2월 YTN이 유진그룹에 매각된 후 선임된 첫 사장으로 지난 1일 취임했다. YTN 기자 출신인 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낙하산 인사 반대 투쟁’에 나선 YTN 기자 33명 중징계 당시 인사위원을 지내는 등 노조 탄압과 보수 진영 언론 장악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YTN 구성원들은 김 사장 선임에 반대해왔다.

YTN의 사과는 지난해 11월 박민 KBS 사장의 ‘대국민 사과’와 판박이라는 평가도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취임한 첫 KBS 사장인 박 사장은 취임 다음날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 등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보도가 “불공정 보도였다”며 사과했다.

박민 KBS 신임 사장(왼쪽 세 번째)은 취임 다음날인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불공정 보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돌발영상' 한동훈은 방영, 문재인은 불방

3일 YTN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윤석열 정부 비판 발언을 담은 ‘돌발영상’ 불방을 결정했다. YTN지부에 따르면 이 영상은 “70(세) 평생 지금처럼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정부는 문재인 정부”라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역공도 담겼다. 네거티브 공방만 남은 정치 현실을 풍자한 영상이지만 보도제작국장이 “불공정하다”며 불방을 결정하고 “어디에도 유리하게 만들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내용을 수정해 방송하려했지만 무산됐다. 노조는 “2일 방영된 돌발영상에는 한동훈 위원장이 중점적으로 등장하는데 그때는 아무 말 없었다”며 “전두환 군사 독재를 연상케 하는 최악의 언론 통제가 YTN에서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YTN은 2일 방송한 '돌발영상'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YTN 캡처
<김백 YTN 사장 사과문 전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YTN 신임 사장으로 취임한 김백입니다.
저는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YTN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내 최초의 보도전문채널입니다.
언론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로 국민 여러분께 봉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YTN은 그동안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점, YTN을 대표해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언론은 ‘사회적 공기’이며, ‘권력의 감시자’입니다.
이것이 상식이며 기본입니다.
그런데 YTN의 보도는 때론 기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여론 형성’이라는 사회적 책임도 다하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 과정에서도 일부 편파‧불공정 보도로 국민 여러분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특히 언론의 기본 중 기본인 균형추를 상당히 잃어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인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보도했습니다.
의혹을 균형있게 보도하는 것과, 일방의 주장만 중계하다시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결국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수차례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습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중에는 오세훈 후보의 이른바 ‘생태탕’ 의혹을 24시간 동안 십여 차례 보도하면서 경쟁자였던 박영선 후보의 도쿄 아파트 보유 사실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불공정‧불균형 보도가 선거 때만 되면 독버섯처럼 반복됐다는 점입니다.

국민여러분께서는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사흘 전, 인터넷 매체를 통해 흘러나온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조작 보도를 사실 확인도 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공정하고 정확해야 할 언론의 펜 끝이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절대적 가치를 훼손한 것입니다.
YTN은 결국 사과방송까지 했습니다.
YTN이 이런 ‘묻지마식’ 불공정‧편파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사과에만 그치지 않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부당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새출발하는 YTN을 지켜봐주십시오.
대한민국의 뉴스채널 YTN을 국민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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