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맛집마저 `그랑서울` 떠나게 만드는 주범은…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종로대로변도 장사 접은 상가 많아
공평동서는 서민 메뉴인 도시락·분식업도 영업종료
서울 종각역 상권이 심상치 않습니다. 종각역과 연결된 건물 상황이 대표적인데요, 그랑서울 상가 임차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지하층에 입지한 상가도 예외는 아닌데요. '국내에 한우1++이라는 등급을 널리 알린 식당'으로 유명한 국내 한우 파인다이닝 '투뿔등심'도 조만간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고급 한우메뉴와 인테리어로 그랑서울 맛집 대열을 이끌어온 브랜드지만, 아무래도 주변 상가 공실이 속출하며 사람들의 발길을 잡지 못하자 결단을 내린듯 합니다.
종로는 대형오피스빌딩 아케이드 상권 뿐 아니라 대로변 상황도 녹록치 않습니다. YMCA 바로 옆 공평15·16구역이 오랫동안 재개발 중이라 인사동까지 이어지는 상권은 영 비실비실합니다. 그나마 원래 번화가였던 길 건너 관철동은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 듯 하지만, 코로나가 몰고왔던 불황도 거뜬히 견뎠던 한솥도시락이나 두끼(떡볶이 무한리필 뷔페 프랜차이즈) 등의 음식점들이 이미 짐을 뺀 상황이라 살짝 위태위태해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발로 뛰는] 시간엔 함께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일대로 가보실까요. 우선 청진동 그랑서울입니다.
애초 GS건설의 둥지는 서울역 역전타워였습니다. 1988년부터 그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가 종각역 인근에 그랑서울을 지으면서 2014년에 사옥을 옮겼는데요, 약간 조건이 붙었습니다. GS건설은 10~20년 책임임차 조건으로 그랑서울 준공 전에 코람코자산신탁에 매각한 뒤에 입주했던 겁니다. 아 실제 건물주는 국민연금이라고 합니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지분 99%, 코람코자산신탁 1%)로 있는 코크렙청진제18·19호 위탁관리리츠를 코람코자산신탁이 운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부분에서 최근 이슈가 생겼습니다. 빌딩 한 동 전체(B동)를 사옥으로 20년간 임대하고 다른 한 동(A동)은 10년간 임대하는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 back)' 조건이었는데, A동 계약이 끝나면서 재임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GS건설은 작년 하반기부터 기술본부를 서초IC인근 빌딩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작년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여파로 인한 GS건설의 실적악화 때문이었을까요, 아님 종로가 포함된 중심업무지구(CBD)의 오피스 임대료가 너무 올랐기 때문일까요.
이 부분에 GS건설 측은 "재임대여부는 국민연금 측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애초 기술본부가 그랑서울과 용인센터에 나눠져 있었는데, 서초타워로 모아 한 곳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 비용을 더 들인 것이다. 실적악화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암튼 여기에 갑자기 A동의 상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청진상점가'라는 이름의 그랑서울 상가에 들어온 소상공인들이 건물주(?)인 코람코와 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GS건설과 전대차계약을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있지 않느냐-라고 되물으실 분들이 계실 듯 한데요. 실은 저도 자세히 모르고 있는 내용이라 찾아왔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4(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등)는 전대인과 전차인의 전대차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김문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만약 전대차 계약에서 소상공인이 임대인(건물주)의 동의를 받아뒀다면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권을 이용해 최초 임대차 기간을 포함한 10년 이내에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도 "대신 이를 포기한다는 특약이 없는지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설명해주셨는데요.
아이고야 그런데 2018년 전후로 입점한 청진상점가 소상공인들은 이런 세세한 부분은 커녕 전대차 계약 종료 날짜를 GS건설의 임대차계약(A동 사용기간)에 맞춘 올해 2~3월까지만으로 해둔 상황이라 계약갱신이 아예 막힌 듯 합니다. 가게를 누군가에게 넘기는 상황도 아니여서 당연히 '권리금'은 꿈도 못꾸고, 되레 계약서에 서명한대로 '원상복구'까지 해야해서 철거 비용까지 감당해야합니다.
물론 완전 다른 상황의 점포도 있습니다. 가장 처음 언급한 한우 레스토랑인데요, 오는 19일까지만 장사를 한다고 하네요. 그랑서울 지하 1층의 공실이 늘어가는 분위기인데다 이미 인근에서 다른 점포를 운영 중이라 해당 레스토랑은 그랑서울점을 닫기로 했다고 합니다. 실제 돌아보니 지하 1층의 많은 상점들이 짐도 빼고 간판까지 싹다 치워놨네요.
'불황의 그림자'인 공실은 종로대로변에도 너무도 크게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종각역 4번 출구 보신각 바로 옆 빌딩은 아직도 초장기 공실상태를 유지하고 있네요. 삐삐(무선호출기)도 없던 시절, 젊은이들의 대표 약속 장소였던 파파이스가 입점했던 그 건물에 안과가 들어왔다 나간 뒤론 계속 불이 꺼져 있습니다. 옛 종로서적 건물엔 다이소가 입점했다가 나갔었는데, 오 다행히 지금은 다른 업체가 들어온 듯 하네요.
조금 더 걸어봤습니다. 아 예전에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갔다 나간 상가자리는 아직도 '임대문의'가 붙어있고, 옛날옛날 3층 건물 통으로 맥도날드였던 건물은 할리스와 바통터치를 했지만 지금은 역시 애타게 임차인을 찾고 있네요.
블록 끝까지 갔다가 관철동 안쪽으로 가봤습니다. 오 아직 관철동 살아있네~라는 느낌이 살짝 들 정도의 명맥을 유지하는 듯 했지만 일부 음식점들은 간판이 바뀌었네요. 그런데 혹독한 코로나 시기도 견뎠던 한솥도시락과 두끼 등의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야 말았네요. 특히 두끼는 지하 1층이라 임대료가 다른 점포들 대비 낮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결국 매장을 비웠습니다.
길건너 공평15·16구역의 재개발 사업이 오는 2026년에 끝난다는데요. 연면적 4만평의 대형 업무·상업시설이 들어서면 종로 상권에도 온기가 돌 수 있을까요. 부동산중개법인 대표께 시장을 어떻게 보시는지 여쭈었습니다.
...네 매우 어둡게 보시네요. 상권의 주 소비층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인데 회식이나 모임을 선호하지 않아 이들의 발길을 잡을 수 없고, 또 모바일 쇼핑에 익숙한터라 장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부동산중개법인) 대표는 "종로상권은 중간에 광장시장만 잠깐 호황일 뿐 종각부터 종로6가까지 거의 초토화상태다. 지금 임대료로는 아무리 장사가 잘돼도 본인(사장) 인건비나 겨우 나오는 수준일 것"이라며 "현재 임대료에서 50% 이상 내려간다고 해도 주소비층인 MZ세대의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수익이 나지않아 공실 상태가 더 이어지거나 전면개발되는 수순을 밟아야할 것"이라고 내다보셨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우울한 내용으로 마무리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약간의 가능성'을 모셔왔습니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코로나 이후에 상가 패턴은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처럼 문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전혀 임대료조차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오프라인 매장이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상태다. 당연히 권리금 시장도 함께 무너진 상태"라며 "때문에 최근 창업관련 문의가 들어오면 무조건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를 병행할 수 있는 업종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하아 예전의 그 번쩍번쩍했던 호황기는 다신 볼 수 없는걸까요. 그래도 오프라인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 한줄기 담고,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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