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자유를 주는 일이 최고의 정치교육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선거를 몇주 앞둔 날 교사 회의. 아이들에게 ‘선거 관련 특강’을 해보겠노라, 자청했다. 고학년 아이들이 곧 유권자가 될 터인데 정치 상황이나 선거제도에 관해 알려주는 일관된 정보 제공 통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교안을 작성하려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이들에게 3분 정도 분량의 뉴스 보도를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 기사 몇 꼭지를 찾아 들어보았으나 아이들을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전문 용어가 넘쳐났다. 공천, 초선의원, 공관위, 불출마, 전략 지역구, 표심몰이,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 오차범위, 당적 변경,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그러니 ‘교양강좌’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단번에 이해시키겠다는 내 의도는 만용에 가까웠다.
선거의 정의와 종류 알기부터 시작했다. 국회의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살폈다. 박근혜씨의 탄핵 소추 과정을 복기해주었다. 촛불 함성으로 결집한 국민의 뜻, 국회의 의결,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이어진 8년 전 생생한 사건을.
아이들은 ‘돈’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임기 4년 동안 국회가 처리하는 예산 합계가 2554조원. 이것을 유권자 4428만명으로 나누면 투표용지 한장의 ‘정치적 값어치’가 5768만원이라고 일러줬다.
“얘들아, 5만원 지폐 100장을 하나로 묶으면 두께가 1.1㎝라고 해. 500만원인 거지. 1조원을 만들려면 이런 돈뭉치 20만 묶음이 필요하거든. 이걸 세로로 세워서 배열했을 때 220㎞쯤 된단다. 서울역에서 우리 제천간디학교를 지나 단양버스터미널까지 돈을 늘어놓아야 바로 1조원. 우리 정부는 이 돈의 638배를 해마다 나라 살림살이 자금으로 쓰는 거란다.”
특강 도중 아이들 눈빛이 두번째로 반짝거렸던 지점은 ‘비례대표제’ 설명 순서였다. 소수 정당과 거대 정당이 선거연합을 하여 합의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자 순번을 정할 수 있다고 하니 무척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영남과 호남에서 특정 정당에 몰표를 쏟아붓는 투표 성향은 왜 나왔는지 말해줬다. 인구 과밀 또는 과소 지역에 따른 선거구 조정 문제도 전했다. 선거구 지도만 보아도 대도시 인구 집중 현상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적절한 도표와 지도를 찾아 제시하니 아이들의 이해가 훨씬 빨랐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든 교육용 자료를 두루 살펴 일부 데이터를 인용했다. 약간의 도움을 얻었으나 대개 관에서 만든 교육용 자료들은 선거법 주요 내용 전달, 사실 위주의 건조한 진술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정치교육’을 하기 위한 개방성이 부족하다. 이 영역에 발을 들이면 뭔가 ‘위험물 취급 책임자 자격증 시험’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다. ‘정치적 중립성’이 교육계에서 불문율로 강하게 자리 잡은 탓이다. 정치에 대한 이해와 언급 없이 ‘관심을 꺼버리는 태도’를 중립성 지키는 것처럼 여긴다. 교육 현장을 ‘중립 지대’로 몰아가서 이득을 누리는 세력이야말로 비열한 정치 모리배 집단이다.
우리나라 정당법 22조 1항을 보면 “16세 이상의 국민은 (…) 누구든지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2022년에 정당법이 이렇게 개정되었을 때 언론이 보인 첫번째 태도는 ‘우려’였다. 학생들이 유튜브 같은 자료를 보며 우르르 몰려다니거나 정치적 선동가의 생각을 좇아 쉽게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를 담아 보도했다. 한마디만 묻자. 상당수의 어른은 안 그런가?
정치는 위험물로 취급받을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잔치로 여기고 마음껏 누려도 되는 영역이다. 서로의 견해 차이를 확인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말잔치, 현안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아이디어 잔치, 모호함과 의뭉스러움을 견디면서 기다리는 배려 잔치를 이른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학생회를 중심으로 교내에 얽힌 복잡한 사안을 하나씩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 안다. 이미 그들은 정치적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교사와 학생들의 손발에 채운 정치적 족쇄부터 풀어내자. 교사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도 못 내고,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 단추 한번 누르는 것도 금지하는 게 말이 되는가. 해방 정국 때부터 중얼거렸던 ‘정치적 중립성’을 더 이상 되뇌지 말라. 마음껏 정치 토론을 펼치고, 견해 표현할 자유를 주자. 그것이 국가가 실행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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