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대화 제안에 전공의들 "생방송 토론해야", "의견 수렴이 먼저"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제안에 전공의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습니다.
집단 사직하고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일부는 윤 대통령의 대화 제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대화하더라도 생방송 토론으로 해야 한다", "밀실은 절대 안 된다" 등의 주장을 폈습니다.
반면에 "정부와 충분히 소통할 창구와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며 대화 제안에 응해야 한다는 전공의들도 있었습니다.
수련병원 교수들도 '국가의 대표'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면서 전공의들의 입장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도 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오늘(3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전날 대통령의 대화 제안이 나온 후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나 메신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이에 대한 의견들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조윤정 홍보위원장은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가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서 대화해 달라"고 호소했고, 윤 대통령은 이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일부 전공의들은 "대화에 응하는 것이 이득이 있을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2천 명 증원을 양보하지 않았는데 이를 백지화하지 않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대화 참여는 언론 플레이에 당할 수 있다", "질문은 받지 않고 혼자 이야기하다가 돌아갈 수 있다"며 불신을 내비치는 전공의들도 있었습니다.
취재에 응한 사직 전공의 A 씨는 "전의교협에서 전날 대통령에게 '5분만 안아달라'고 말한 후 짜인 각본인지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실에서 만나겠다고 했다"며 "우리의 입장은 여기 들어있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A 씨는 "다수 친구의 확실한 여론은 '안 만나는 것이 맞다'는 것"이라며 "전공의들 나이가 대부분 30대 초반인데 이용당할 여지가 있고, 증원 철회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경우'도 전공의들 사이에서 생각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전공의는 정부가 '증원 철회' 조건을 말하지 않는 이상 만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만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A 씨는 "어쨌든 만나게 된다면 무조건 생방송으로 해야 한다. 녹화 방송은 절대 안 된다"며 "기자들을 불러 공개된 곳에서 해야 하며, 밀실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박 대표나 (최근 전공의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등이 만약 토론을 원한다면 전공의 전체의 의견이 수렴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공의 B 씨는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 당선자가 지난 2월 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윤 대통령이 참석했던 의료개혁 주제 민생토론회에서 입이 틀어막힌 채 쫓겨났던 일화를 거론하며 "소통이 되는 토론회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B 씨는 "민생 토론회는 말만 토론회고, 패널들이 하는 말이 뭔지 정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이 하자는 대화에 응하는 것이 전공의와 대화했다는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노리개' 역할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과의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전공의들의 복귀는 회의적이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전공의 C 씨는 "사직한 전공의들의 단체는 우두머리가 없고 다들 개인적 사직이라서 누가 대표로 대통령이 대화한다고 해서 결정이 뒤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며 "'2천 명 증원 백지화', '필수의료 패키지 폐지'를 한다고 하더라도 안 돌아갈 사람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면서도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사직하지 않고 의료 현장에 남는 전공의 D 씨는 "'꼭 총선 전이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화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D 씨는 "지난 1일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문에 실망했다. 정책에 대한 구체적 보완 방안 없이 계속하던 말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며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전공의와 대화했다'고 보여주기식 만남을 하고, 전공의들의 의도를 곡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대표단을 구성해 대화 테이블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D 씨는 "(총선) 이후에도 전공의들이 독자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고, 정부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창구와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후 대화에는 대통령과 전공의단체뿐 아니라 다른 이해당사자들도 함께하는 자리에서 의료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며 "정책을 결정하는 데에는 전공의 의사만 중요한 게 아니라, 환자 등 시민들 입장도 중요하고, 대전협과 입장이 다른 의사단체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들어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직한 전공의들이 근무했던 수련병원의 상당수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 교수는 "이건 정책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은 우리가 직접 선출한 국가의 대표자"라며 "대표자가 직접 만나자고까지 했으면 대표로서의 권위를 존중해 국민으로서 만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까지 전공의들은 언론과 보건복지부가 본인들의 주장을 왜곡한다며 대화를 거부해 왔고, 이에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의견을 얘기하라고 기회를 준 것"이라며 "이것을 거부하는 건 무정부주의자 같은 자세"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책에는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으나, 국가나 사회가 가진 기본적인 질서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다른 수련병원 교수는 "전공의에게 어떻게 만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만나야 뭐라도 이야기가 되지 않겠나'라는 의견"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일단 전공의들끼리 연락이 너무 안 된다. 전공의 내부에서 본인들끼리도 연락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답답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대화 성사 여부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 교수는 "대화 상대로서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응하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1일에 발표된 담화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대통령이 대화하자는 게 아니라, 정책을 강경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뜻이구나'라고 이해했을 것"이라며 "전공의들을 부르려면 '2천 명'을 고집하지 않고, 전공의들이 반대하는 모든 정책을 일단 유예하겠다고 명확하게 선언하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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