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혁명의 그림자 ‘노풍’ 벼…‘통일벼’ 영광 저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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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자급 달성이 공식 선언된 날은 1977년 12월20일이다.
이른바 '녹색혁명'이 정점을 찍은 순간으로, 그 선봉에는 '통일벼'가 있었다.
현재 '통일벼'라고 부르는 품종들은 '노풍' 같은 후속 품종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통일벼' 계통으로 수확량이 50%가량 많고 밥맛이 좋은 '노풍'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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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때 대대적 보급 나서
78년 도열병 창궐…피해 심각
주곡 자급 달성 1년 만에 파동
정부의 강제 농정 뼈아픈 경험

쌀 자급 달성이 공식 선언된 날은 1977년 12월20일이다. 이른바 ‘녹색혁명’이 정점을 찍은 순간으로, 그 선봉에는 ‘통일벼’가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사이 ‘통일벼’의 영광이 저문 사건이 있었다. 바로 ‘노풍 파동’이다.
‘노풍’은 밥맛과 미질을 개선한 통일형 신품종이다. 현재 ‘통일벼’라고 부르는 품종들은 ‘노풍’ 같은 후속 품종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1970년대 국내 쌀 생산량을 가파르게 늘린 ‘통일벼’의 최대 단점은 밥맛이었다. 쌀의 끈기가 적어 차진 밥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진 않았다. 주곡 자급을 달성하고 풍년을 이룬 후 ‘통일벼’의 문제점은 더 부각됐다. ‘통일벼’는 보온 못자리, 비료, 농약 등을 많이 써야 해 생산비가 많이 들었다. 또 양질의 일반 벼보다 시장가격이 낮게 책정됐다.
그러던 중 ‘통일벼’ 계통으로 수확량이 50%가량 많고 밥맛이 좋은 ‘노풍’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녹색혁명 성취’에 힘입어 ‘노풍’ 등 신품종의 대대적인 보급이 시작됐다. 지역별로 재배면적을 할당하고 정부가 신품종 재배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강제에 가까운 농촌지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실적을 채우는 데 몰두한 공무원들은 통일형 품종을 심지 않으면 모판을 뒤집어엎는 일도 있었다. 그 결과 1978년 ‘노풍’을 포함한 통일형 신품종의 재배면적은 전체 논 면적의 76.2%를 차지했다. 벼 재배가 불가능한 산간 고랭지 등을 제외하면 모든 논이 통일형 신품종으로 메워진 셈이었다.
하지만 통일형 일변도는 한계가 드러났다. ‘통일벼’를 쉽게 감염시키는 도열병균 돌연변이가 나타나면서 통일형 신품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 가운데 ‘노풍’의 66%가 도열병에 걸렸다. 1978년 발생한 도열병 창궐을 노풍 파동이라고 부른다. 도열병 피해를 본 신품종 규모는 논란이 많았는데 1978년 12월23일 농수산부가 내놓은 정밀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풍’ 등 신품종을 심었다가 도열병으로 20% 이상 피해를 본 농가는 3만520가구, 총 15만4272㏊(‘노풍’ ‘래경’ 식부면적의 86.5%)로 집계됐다.
결국 다시 쌀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으로 바뀌었다. 한국기록원의 ‘중요 공개기록물 해설집’에 따르면 1979년 정부관리 양곡수급계획에는 외국산 쌀 도입이 없었다. 하지만 50만t의 쌀이 비밀리에 긴급 도입됐다. 한국기록원은 1978년 ‘노풍’ 피해가 예상보다 컸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노풍’ 피해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도 했다. 전국에 ‘통일형’이라는 하나의 품종만 심는 단작화는 생태적 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염병이나 환경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1977년부터 통일형 신품종에 대한 도열병 사례가 산발적으로 보고되기 시작했으나 4000만석(1석=144㎏) 고지를 눈앞에 둔 정부는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통일벼’와 증산체제의 성쇠: 1970년대 ‘녹색혁명’에 대한 과학기술사적 접근”이란 논문에서 김태호 현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는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경직되면 결국 기술 프로젝트는 사멸의 길을 걷는다”며 “1970년대말 증산체제가 흔들리는 과정도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병원체의 진화가 통일형 품종이 병충해를 입는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농업 행정가들이 이 문제를 예상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구조적인 이유가 더 컸다는 의미다.
통일형 품종은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잊게 했지만 강제 농정의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게 하며 한국 농업에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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