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5] 누가 누가 더 ‘비범한 사람’인가?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과 어떻게 구별됩니까? 제 말은 여기엔 좀 더 외적인 확실성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겁니다. 저 같은 실제적이고 사상이 온건한 인간이 갖게 되는 불안이라고 여기고 용서하십시오. 이를테면 특별한 옷으로 정한다든지, 무슨 표지를, 인장 같은 거라도 지니고 다닌다든지, 뭐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만약 혼란이 생겨서 한쪽 부류의 인간이 자기가 다른 쪽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당신의 아주 적절한 표현대로 ‘모든 장애를 제거하기’ 시작한다면, 그땐 정말….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중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역구 국회의원 254명과 비례대표 46명 선출을 위한 벽보가 나붙고, 선거 공보물이 배달되고, 사전 투표도 시작된다. 거리마다 후보자와 지지자들의 확성기 광고가 요란하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사람에겐 법을 넘어설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물을 제거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빠는 악인이라고 판단해 전당포 주인을 죽인 뒤 죄책감이 엄습하자 자신은 평범한 사람일 뿐, 영웅 자질이 없다며 괴로워한다.
라스콜니코프의 살인을 눈치챈 예심 판사는 그의 논리를 인용하며,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사람인 줄로 자신을 오해하면 어떡하냐고, 비범한 사람에겐 특별한 표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실제로 너무 많은 평범한 사람이 법 초월자를 자처한다. 별별 죄를 다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 없이 타인을 단죄한다. 자신의 면책특권이 나라와 국민을 위기에서 구한다며 수치심도 없이 사회 정의를 외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 배지가 ‘비범한 사람’의 표지다. 그 표지를 얻고 싶어서 도전한 후보자가 952명, 아파트 분양권으로 돈을 벌려고 생겨난 떴다방처럼 비례대표를 신청한 정당은 38곳이나 된다. 그중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사람이라 착각하고 나섰을까? 그래도 당선만 되면 180가지가 넘는, 하느님도 부러워할 국회의원 특권을 누린다.
평범한 사람들은 좋은 세상을 바라며 투표장으로 간다. 이번 선거만이라도 ‘어떤 불법과 범죄라도 행할 수 있는 특권, 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권리’를 원하는 사람을 뽑는 이벤트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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